섬과 바다는 광풍이었다.
가파리(가오리)를 닮아 가파도라 했다던가 파도가 많아 가파도라 했는가.
운진항에서부터 섬까지의 짧은 뱃길은 높은 파도로 일렁거렸다. 오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곳은 늘 이리도 바람 세고 파도가 높다고 했다.
그러니 이 섬의 이름은 파도가 거센 加波島, 또는 加波濤라 하는 게 적당할 것 같다.
상동포구에 도착했지만 거센 파도에 여차하면 전복될 듯이 배는 위태해 보였다. 선장은 여기 바다는 늘 이렇다는 방송으로 불안해하는 승객들을 안심시킨다. 가까스로 접안을 하고도 선체는 널뛰듯 오르내렸다. 위태롭게 선착장에 오르고 나서야 승객들은 십년감수 마음이 놓였다.
가파도는 넘실대는 보릿물결이 장관이라는데 수확이 끝난 들판은 텅 비었다.
허허롭다. 첫 추위를 코앞에 둔 늦가을 들녘 같다.
빈 들판을 내내 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한 입 배가 관광객들을 토해내지 않았다면 황량하고 쓸쓸해서 눈물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이쪽을 보면 산방산이 건너다보이고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마라도가 지척이다.
아, 말로만 듣던 마라도를!
강원도 산골의 촌놈이 책에서 배운 그곳들을 눈으로 본다는 걸 감히 생각했을까. 돌아보면 내 삶의 여행은 제법 역동적이었음을. 경이로운 여정이여.
스스로 찬탄하고 한껏 자긍심이 부푼다.
어디를 보아도 바다뿐인 이 섬. 머나먼 나라. 외로움.
나는 이런 이국적인 풍정이 좋다. 고독이 좋다.
다 늦은 저녁답에 이륙한 비행기에서의 풍경은 또다른 경험이다.
서쪽 하늘로 태양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 태양이 저 아래 나보다 낮은 곳에 있다.
태양은 일생 올려다보는 존재여서 우러르고 숭앙하는 것으로만 알았지.
그 고착화된 습관과 편견이 깨지고 태양을 눈 아래 내려다보는 경험은 역시 경이로운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정답이 없다. 우린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왔는가. 정답을 정해 놓고는 그것을 향해 숨이 차게 뛰어 가는 걸 인생의 정도로 알고 몰려들고들 있지.
다리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를 기둥처럼 생겼다고 우길 것이고 귀를 만진 장님은 부채 같다고 우길 것이다. 다 맞지만 또한 다 맞는 것도 아니다.
태양이 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태양이 떨어지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없다.
손에 닿을 듯한 태양 뒤쪽 어름에 내 지나온 과거가 보이는 듯했다. 동시에 내 앞의 미래도 아스라이 보이는 것은 정녕 착각이기만 한 걸까. 이상한 광경이었다.
비행기 한두 번 타 본 것 아니면서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가.
가파도 올레길
섬 둘레를 다 돌아야 4km이니 보통걸음이면 두 시간이면 둘레와 고샅길 등을 샅샅이 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운진항에서 배표를 살 때 2시간 20분 후에 뜨는 왕복표까지 일괄예매해준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최백호 작사 작곡 노래 :가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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