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삼천포 아가씨

설리숲 2022. 4. 8. 23:21

 

이틀간 비가 많이 내린다는 예보. 봄도 거의 막바지다.

다원에 있어 봐야 할 일도 없고 진종일 잠에 빠져 있거나 술 좋아하는 여자들 등살에 불콰하게 취해 있거나 할 것이다.

 

잔뜩 흐려 검은 구름이 무겁게 잠긴 진양호를 한 바퀴 둘러보고 사천읍을 지날 때쯤 예보대로 비가 쏟아진다. 삼천포는 비가 와야 제격이다. 일종의 선입감이다. 그 옛날 은방울자매가 부른 노래의 가사가 비 내리는 삼천포로 시작한다. 대중가요의 위대함은 그것으로 인해 어떤 특정한 장소가 널리 알려지는 것이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는 속설이 있듯 삼천포는 특별히 가 볼 일이 없는 지방이었다. 부산 마산 등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왕래하거나 같은 경상도 지방을 가면 갔지 생뚱맞게 바닷가에 되똑 나앉은 삼천포를 갈 일은 없는 것이다.

삼천포 사람들로서는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할 속설이지만 지도를 놓고 짚어 보면 과연 그렇기도 하겠구나 여겨진다. 그러니 물자의 공수도 처지고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어서 발전이 좀 더딘 편이었다.

이런 계제에 은방울자매의 노래가 히트하면서 알려진 삼천포의 선입감은 비가 내리는 항구인 것이다.

삼천포라는 이름은 고려시대에 생긴 이름이라는데 수도인 개성까지의 거리가 삼천리라고 한다.

 

 

 

 

 

한때 이곳에 살았었다. 삼천포 시내가 아니고 사천읍에 살았었는데 삼천포시와 사천군이 통합된 지 얼마 되지 않는 때였다.

사천시로 통합되었지만 두 지역의 주민들은 융합하지 못하고 여전히 겉돌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지역감정의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아마 주민의 의견을 묻지 않은 일방적인 통합이었나 보다.

사천읍에 적을 두고서 뻔질나게 삼천포 항구를 드나들었었다. 조촐하고 소박한 항구의 풍취가 좋았다. 그리고 포구 사람들의 질펀한 사투리가 듣기에 제법 감칠맛이 났었다. 남해 바닷가의 작은 시가지. 숨어 있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역시 시간의 흐름이라 많이 변했다. 사천읍에서 항구로 내려가는 길은 좁은 2차선 길이어서 자전거로 내달릴 때 무척이나 위험했었는데 지금은 널따란 4차선 도로가 돼 있다. 그만큼 노변의 풍경도 예전의 소박한 맛이 사라졌다.

 

봄철이면 선진리 일대는 온통 하얀 벚꽃이어서 봄만 되면 그곳의 풍경이 암암했었는데 여전히 벚나무는 여기저기 보여도 그때만큼은 아니었다. 또 제법 넓은 키위 농장이 있어 그 이국적인 정취를 즐겼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져 버렸다.

세월의 흐름이야 다 그런 거지. 은방울자매가 삼천포 아가씨를 노래할 때만 해도 고적하고 조촐한 해변이엇을 테지만 산업과 교통의 발달로 아름다운 풍경들은 사라지고 부두와 항구에 딸린 건물과 구조물들은 풍경은 삭막하다.

게다가 옛 항구 말고도 신항이 새로 들어서서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선진리성의 벚꽃

 

 

 

 

 

 

 

바닷가에 나앉은 삼천포 아가씨.

뭐 이러구러 한 여인의 사연이 있다고 홍보하지만, 대부분이 다 근거없이 만들어낸 이야기다.

박달 도령과 금봉 낭자의 전설이 얽혀 있다는 제천 박달재도 실은 노래가 히트하고 나서 그 가사 내용을 토대로 만들어 낸 이야기고,

이 삼천포 아가씨도 은방울자매의 노래 때문일 것이다.

소양강처녀, 처녀뱃사공 등 이런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 무수히 탄생하였다.

 

 

 

 

늦봄의 나뭇잎들이 비를 맞아 싱그러움을 더하고 빗속에서 느끼는 낭만은 그대로여서 마치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의 장소를 배회하듯 옛 항구의 골목들을 걸어다녔다. 여름이 가까워 왔건만 비에 흠뻑 젖고 있는 항구는 꽤나 을씨년스러웠다. 어느 포장마차에서 내놓은 연탄화덕이 무척이나 따습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고

시간은 흘러 다시 돌아오지 않으나 추억은 남아 떠나지 않는다는 생각과 함께

옛 정취는 사라졌어도 노래는 남아 포구 곳곳에 스며있음을 본다.

 

이제 이곳을 또 언제 돌아보게 될까. 언제부터인지 어느 곳을 가더라도 어쩌면 이번이 이곳을 찾는 마지막일 거라는 허허로운 생각을 하게 된다.

허허로운 게 아니라 정말로 그럴 것이다. 왜냐면 여전히 돌아다닐 곳이 많으니 같은 곳을 또다시 찾아올 기회가 희박진다. 세상은 넓고 갈곳도 많으니.

내가 지금 20대의 청춘이라면 감히 가질 수 없는 이 허허로운 감정.

 

 

 

반야월 작사 송운선 작곡 은방울자매 노래 

: 삼천포 아가씨

  

'서늘한 숲 > 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찔레꽃 향기가 슬픈가?  (0) 2023.05.25
거센 바람 거친 파도 가파도  (0) 2022.06.14
송지호연가  (0) 2021.10.21
이방초등학교와 산토끼  (0) 2021.06.07
소녀와 가로등  (0) 2021.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