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고3 학사일정이 남아 있었지만 대입학력고사를 치르고 나서부터는 모든 게 건성건성이었다. 모든 교과목이 수업진도가 중간에서 멈추었고 과목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어여부영 등교해서 시간만 때우다 겨울방학이 되면 저절로 고등학교 학창시절이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겨울방학이 끝나고도 봄방학까지 정상등교하는 두 주간의 일정이 있지만 대입고사와 함께 우리는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대학시절이 시작되는 3월초까지 우리는 인생 최고의 날들을 보냈다. 약 석 달 가량의 날들이지만 3년쯤이나 되는 것 같은 날들이었다. 아직은 고등학생 신분이었지만 오랫동안 억눌려 지냈던 날들을 보상받고 싶은 심리들은 자유와 방종을 구분 못한 채 거리를 쏘다녔다. 다방과 생맥주집을 드나들었고 손가락이 하얗게 초크를 발라가며 큐대를 겨냥했다. 허구헌날 역시나 풀어진 계집아이들을 후려 미팅을 했고 미성년자불가 영화를 보았다.
운교동에 있는 B의 집이 우리 패거리의 아지트 격이었다. 약속도 없으면서 우리는 B의 집으로 갔고 시시껄렁한 잡담으로 시간을 때웠다. 나만 뻬놓고는 죄다 담배들을 피워 B의 방은 온종일 연기로 가득했다. 때로는 그의 어머니 신세를 지며 저녁을 얻어먹고는 어둠이 내리면 아무 볼 일도 없으면서 시내거리로 나갔다. 명동거리를 걸었고 공지천 유원지를 헤매 다녔다. 간혹 게서 만난 계집애들과 짝짜꿍이 맞는 날에는 우리들 중 누군가는 집에 다녀와야 했다. 어머니한테 되도 않는 거짓말로 돈을 타내 생맥주집에 앉아서 희희낙락하는 비용을 대곤 했다. 그 짓거리가 쓰잘데기 없는 것이라고만 못 하는 것은 그때 만난 애들이 나중에 결혼도 한 커플이 있었으니 돌아보면 나름 보람도 없진 않았다. 그렇게 화려한 겨울이었다.
요선동은 이른바 뉴욕으로 치면 할렘가에 해당하는 동네였다. 환락 유흥가이면서 슬럼가이기도 했다. 클럽이 있었고, 마담과 미희들이 있는 각종 술집들이 있었고 사창가도 있었다. 춘천을 떠난 지 오래라 지금의 요선동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 화려한 겨울을 지나는 동안 그 요선동에서 B의 누나를 만난 기억이 생생하다. 아니, 그의 누나가 아니라 그 조카를 만났다고 하는 게 옳다.
B의 집이 아지트여서 우리는 그 어머니와의 정도 도타웠다. 또한 그의 누나와도 각별하게 친했었다.
어느 날 B와 더불어 요선동 골목엘 갔다. 그날은 그와 나 둘뿐이었다. 그가 왜 나를 데리고 거기를 갔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따라가다 보니 요선동이었다.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서는 어느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주위에 사창가가 있는 골목이었다. 들어가서 만난 사람이 뜻밖에도 그의 누나였다. 그의 집에서만 보던 누나라 참말 의외였다. 더 놀라운 것은 방에 들어가서 만난 꼬마아이. 누나의 딸이었다. 그때까지 미혼의 누나인 줄로만 알았는데 실은 출가외인이었던 것이다.
사창가가 있던 요선동에 딸아이와 함께 살고 있었던 것과 친정인 B의 집에 자주 와 있던 것으로 미루어 정상적인 생활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주한미군과의 음성적인 관계로 인한 미혼모가 많았던 시절이었다. 조카아이는 혼혈이 아니었으니 통상적인 추측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 누나에 대해선 전혀 아는게 없다.
B의 조카아이는 참 귀여웠다. 아무하고도 친하게 엉겨 붙는 넉살 좋은 아이였다. 삼촌들한테 노래 한번 해봐. 그 방에 머무는 동안 문득 누나가 딸아이에게 노래를 시켰다.
조카는 망설임 없이 노래를 시작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청산도 저리 푸른데
여자로 태어나서
남자의 애간장을 못 녹일 소냐
이렇게 개사가 된 노래를 부르며 아이는 허리와 궁뎅이를 씰룩거렸다. 누나와 B는 깔깔거리고 아이가 귀여워 미치겠는 표정이었다. 나도 역시 웃었지만 마음으로는 씁쓸했다. 맹모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서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 한다. 환경은 어른들한테도 영향을 미치니 하물며 여섯 살짜리 아이에게는 치명적이라. 사창가에서 자라는 아이의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그때 이후로 친구 B와 더불어 당시의 우리 패거리들 중의 누구도 근황을 알지 못한다. 그의 누나와 조카도 당연히 그렇다. 나는 그 아이의 미래가 우울해져 있을 것 같아 가끔 그들이 생각날 때 그후의 소식이 궁금하기도 하다. 환경의 척박함을 딛고 보통의 삶을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할 뿐.
노래 들을까? 누나의 방에는 고급 전축이 있었다. 조카의 재롱도 끝나고 누나가 전축을 켰다. 음질 좋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는 올리비아 뉴튼존이었다. 나로서는 처음 듣는 노래였다. If Not For You로 시작되는 가사의 노래다.
조카아이가 첫 소절을 따라했다.
기분 나뻐유~~
친구와 누나는 또다시 배를 잡고 깔깔댔다. 나도 역시 깔깔 웃었다. 아이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녀석의 미래가 음울할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짙어졌다.
그날 처음 들은 <If Not For You>의 기억은 이런 사연으로 해서 평생 생생하다. 어쨌든 좋은 음질 덕분이었을까, 아주 좋은 느낌으로 남았다. 그 후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요선동 그 방의 풍경과 함께 허리와 궁뎅이를 실룩거리며 여자로 태어나서 남자의 애간장을 못 녹일 소냐 하던 조카아이의 환영이 더불어 찾아오곤 한다. 기분 나뻐유. 기분 나뻐유.
생애 최고의 나날이었던 그 겨울이 끝나면서 우리는 각자의 학교로 돌아갔고, 한 해 정도를 근근이 만나다가 어느 때부턴지 알 수 없게 영영 인연이 끝나고 말았다.
올리비아 뉴튼존 : If Not For You
'서늘한 숲 > 음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게 내 인생이렷다 (0) | 2019.11.19 |
---|---|
조용필 뮤지컬 <베아트리체> (0) | 2019.09.29 |
예술의 전당 이야기 (0) | 2019.01.24 |
화려한 마지막 밤 (0) | 2019.01.03 |
2018 평창대관령음악제 (0) | 2018.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