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점점 가까워 오는데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있었다. 그까짓 노래 제목 하나 모르고 죽는 게 무슨 대수라고, 그것도 크게 유명하지도 않은 먼 나라의 노래 때문에 나달이 지나갈수록 조바심이 짙어져서 마음에 큰 병이 생길 지경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KBS드라마 <첫사랑>에 깊이 빠진 열혈 시청자였다. 드라마가 절정을 넘어 막바지로 치달으며 종영이 멀지 않은 때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나는 생뚱맞게도 드라마를 다 못보고 돌아가신 것이 길래 마음에 걸렸다. 그 안타까운 심정은 지금도 그렇다.
스무 살 무렵에 어느 다방에서 밤을 샌 적이 있었다. 이미 생명이 다한 지 오랜 VTR, 즉 비디오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초창기였다. 당연 부잣집에서서만 향유하던 물건이었다. 그와 함께 포르노라는 것도 한창 관심이 폭발하고 있었다. 어디 어디서 포르노를 보여 주더라, 라는 일명 카더라 정보들이 귀에 쏙쏙 들어와 또래 아이들과 곳곳을 탐방하고 다녔었다. 반은 정확하고 반은 허위정보였다.
그래서 들어갔던 어느 다방이었다. 늘 그렇듯이 자정이 가까워지면서 다방 안은 점점 사내아이들로 가득 차고 자욱한 담배연기와 함께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설렘과 흥분의 기운이 익어가곤 했다.
그때 들은 것이 그 노래였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어 아이들은 본 비디오를 갈망했지만 주인은 감질나게도 엉뚱한 뮤직비디오만 틀어댔다. 말하자면 프로권투중계 때 메인이벤트 전에 오픈경기만 지루하게 방영하던 것과 같은 것이리라. 그러면서 커피 한 잔씩을 더 팔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뮤직비디오라는 것도 그 당시 새로이 시작하던 장르였다.
그 뮤직비디오 가운데 하나가 내가 평생토록 그 제목을 알고 싶어 했지만 알 수 가 없어 죽음에 대한 조바심을 내게 했던 그 노래였다. 그게 왜 그리 알고 싶었을까. 좋아할 만한 노래도 아니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죽으면 무슨 큰 여한이 될 것만 같은 이상한 집착이었다. 흑인 그룹이 흥겹게 춤을 추면서 부르던 노래였다.
케~ 세라..
아는 건 이 부분이 전부였다. 영어 노래라면 알만한 일부 가사라도 인터넷 검색으로 쳐 봤겠지만 라틴말이니 케세라 말고는 전혀 깜깜이었다.
이제껏 살면서 더러 라디오 등에서 우연히 듣긴 했지만 그 가수와 제목을 알아내지는 못했다. 아, 이러다 결국 궁금증만 안고 죽고 마는가.
그랬는데 궁금증은 너무도 싱겁게 해결됐다. 유튜브에서 ‘디스코’ 그리고 ‘que sera’를 입력해 넣으니 바로 젤 첫머리에 노래제목이 뜬다.
깁슨 브라더스의 <Que Sera Mi Vida>였다. 이렇게 허무할 수가! 필생의 숙제가, 그렇게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던 무게가 겨우 이 정도였다니. 얼마나 바보 같은가! 왜 진작 그걸 생각을 못했는지.
케 세라 비 미다.
그것이 내 인생이다.
흑인 그룹이라 했지만 사실은 깁슨 브라더스는 쿠바의 삼인조 형제 밴드라고 한다. 이 노래는 그들의 최고 히트곡으로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이미 가수와 노래제목을 다들 알고 있는 거였다.
이 허줄함이여. 이 별것도 아닌 것에 내 인생을 저당 잡혔었구나.
The Gibson Brothers : Que Sera Mi V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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