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당진 버그내 순례길

설리숲 2022. 1. 14. 20:54

버그내는 삽교천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인 솔뫼성지부터 시작하여 '한국의 카타콤바'라고 하는 신리성지까지 여러 성지를 잇는 일명 ‘순례길’이다.

 

 

크리스천이 아닌 내게 ‘순례’는 별 의미가 없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순례 목적으로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난 게 아니었을 것이다.

종교는 알지도 못하고 그저 ‘길’을 떠났을 것이다.

 

 

 

솔뫼성지

 

지나간 2021년은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특별희년이었다.

 

 

 

 

 

 

 

             El Bosco : Nirvana

 

이 노래는 스페인의 프로젝트 그룹 엘 보스코(El Bosco)와 엘보스코수도원 어린이성가대가 부르는 <니르바나>다.

니르바나(nirvana)는 열반 혹은 해탈이라는 불교 용어인데 기독교의 성가대가 니르바나를 찬양한다.

 

 

노래가사는 누가복음 21장의 내용으로 god, 알라, 부다, 니르바나가 나온다.

즉,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은 처음부터 여호와와 함께 계셨다.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은 처음부터 부처님과 함께 계셨다.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은 처음부터 알라와 함께 계셨다.

 

여호와 부다 알라 등 모든 종교를 초월하여 절대자는 같은 “하나님”이라는 열린 개념이다.

 

 

 

 

 

 

 

 

 

 

 

합덕성당

 

 

 

 

 

 

 

 

 

이 순례길에 순례자는 한 사람도 보이질 않았다.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긴 건 개다.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다른 사람이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다.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옳고 그름의 개념을 버리라는 뜻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그러니 순례길을 사람이 아닌 개가 걸어간다고 해서 의미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리라. 무엄하지는 더욱 아니리라. 노아로 하여금 방주에 여러 동물들을 더불어 구제하게 한 것은 이들 또한 신의 자손들임을 일깨운 것이리라.

 

 

 

 

 원시장 원시보의 우물

 

 

 

 

 

 

무명순교자의 묘지

 

들머리에는 이해인의 피 토하는 시가 쓰여 있다.

 

 

  오래 전에

  흙 속에 묻힌 당신의 눈물은

  이제 내게 와서

  살아 있는 꽃이 됩니다

 

  당신이 바라보던

  강산과 하늘을

  나도 바라보며 서 있는 땅

  당신이 믿고 바라고

  사랑하던 님을

  나도 믿고 바라고 사랑하며

  민들레가 되고 싶은 이 땅에서

  나도 당신처럼 남몰래

  죽어가는 법을

  배워야겠습니다

 

  박해의 칼 아래

  피 흘리며 부서진

  당신들의 큰 사랑과 고통이

  내 안에 서서히 가시로 박혀

  나의 삶은 아플 때가 많습니다

  당신을 닮지 못한 부끄러움에

  끝없는 몸살을 앓습니다

 

  당신을 통해

  주님을 더욱 알았고

  영원의 한 끝을 만졌으나

  아직도 자주 흔들리는 나를

  조용히 붙들어 주십시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거룩한 순교자여!

  오래 전에

  흙 속에 묻힌

  당신의 침묵은

  이제 내게 와서

  살아 있는 말이 됩니다

 

 

 

 

 

 

 

 

 

 

 

신리성지

 

 

 

나는 불자도 아니고 크리스천도 아니다.

 

다만 성경 전도서를 보면 불교의 교리와 똑같은 내용이 나열되어 있어 경이로움을 느낀다.

갈래는 다르지만 결국 신은 하나인 것이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전도서 1장중에서)

 

 

 

아, 이 생은 헛되고 부질없음이어라.

 

 

 

 

 

버그내길에는 안날 눈이 내렸다.

날이 청청하고 포근해 거의 녹는 듯하더니 홀연히 해가 사라지고 하늘이 낮고 무겁게 내려앉으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아직 못다 녹은 눈 위에 다시 눈이 앉는다.

운전할 일이 아득해 서둘러 발길을 재촉했다.

 

 

새하얀 계절,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 아닌

차갑고 명징한 이 겨울을 찬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