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청암사, 그리고 인현왕후길

설리숲 2022. 1. 20. 23:55

 

김천의 수도산에 청암사가 있다.

숙종의 비인 인현왕후의 이야기가 얽힌 사찰이다.

그리고 김천시에서는 이 근방 숲에‘인현왕후길’이라는 조붓한 오솔길을 냈다.

뭐 특별히 아름답다거나 하지는 않은 그저 평범한 오솔길이다. 그래도 청암사와의 인연과, 혹시 그 옛날 왕후가 울적한 심사를 달래며 걸었을지도 모르는 흔적을 느끼는 것도 나름 의미는 있을 것 같다.

 

이 도량에서 보살생활을 했던 지언 선배가 늘 이야기하더니 그게 바로 청암사였다.

그리고 인현왕후와 인연이 있다는 건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인현왕후는 민유중의 둘째 딸로 숙종의 왕비인 인경왕후가 일찍 승하하고 계비로 간택이 되었다.

숙종은 가례 전부터 나인인 장옥정을 총애하고 있었으나 어머니인 명성대비는 장옥정이 간특하고 악독하다 하여 궁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인현왕후는 전하의 승은을 입은 궁인을 오래 방치할 수 없다며 재입궁을 간청하였으나 명성대비의 완강한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명성대비가 세상을 떠나자 다시 왕에게 간청하여 장옥정이 다시 입궁하였다.

그리하여 조선 최대의 스캔들이자 비극의 스토리가 탄생하게 되었다.

 

연산군의 폭정,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와 함께 훗날 영화와 드라마로 가장 많이 다루어지게 되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장옥정을 궁으로 다시 부른 게 인현왕후 본인이었으니 그로 인한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알지 못한 비운의 여인이었던 것이다.

 

 

인현왕후는 단아하고 현숙한 왕후였다. 그러나 숙종은 왕후보다 경국지색의 나인 장옥정에게 빠져 총애했다.

1688년 장옥정이 아이를 출산하자 숙종의 편애는 더욱 심해져 장옥정은 권력의 중심이 되었다. 이듬해 1월, 왕은 장옥정에게서 난 왕자 윤(昀)을 세자로 책봉하고 장옥정은 희빈으로 책봉되었다.

 

남인의 지지를 받는 장희빈의 세력이 커지자 반대파인 서인과의 피를 뿌리는 당쟁이 격화되었다. 송시열을 우두머리로 한 서인들은 “전하와 왕후마마가 아직 젊으니 원자 책봉은 아직 이르다”고 간언하며 견제에 나섰지만 이미 장희빈에게 마음이 넘어간 숙종은 급기야 서인들을 축출하였는데 이것이 기사환국(己巳換局이다.

지지세력인 서인들이 숙청되고 당연히 인현왕후도 무사할 수 없었다. 서인으로 폐위되어 궁 밖으로 축출되었다. 그녀를 동정하거나 도우려는 자도 모두 역적으로 다스린다는 추상같은 어명이 내려졌다. 왕후의 남겨진 물건도 죄다 불태웠다.

 

성종 때 폐비된 윤씨의 죄는 단지 투기에 있었는데 오늘날 민씨의 죄는 윤씨보다 더하고, 그녀에게 볼 수 없었던 행동까지 겸했다. 그러므로 폐비하여 서인으로 삼아 친정으로 돌려보내니 예관들은 이 내용을 종묘에 고하라.

 

폐출된 인현왕후는 갈 곳이 없었다. 누구라도 그를 거두어주면 극형의 화를 입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은진 송씨의 외가와 인연이 닿아 있는 경상도 수도산의 청암사에 의탁을 하게 되어 세상의 눈을 피해 은거하였다.

청암사와 인현왕후의 인연이 이러하였다.

 

비록 서인의 신분이었지만 청암사에서는 왕후를 극진하게 예우하여 모셨다.

경내에 한옥을 지어 모셨는데 지금의 극락전이라 한다. 보통의 사찰 건물과 달리 단청 없는 여염집 형태의 건물이다.

 

이곳에서 여러 해를 보내면서 왕후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었다. 이렇게 사느니 죽고 말리라 하고 사약을 놓고 섧게 울다가 설핏 잠이 들었다.

꿈에 천축산 불영사 중이라는 백발노인이 나타나 사흘만 더 참고 견디시라는 말을 하였다.

 

그리하여 따듯한 어느 봄날 폐비는 다시 숙종의 부름을 받아 환궁하였다. 폐서인 된지 5년이었다. 뭐 애틋한 애정이 있어서였겠는가. 남인이 몰락하고 축출되는 갑술환국의 결과였다.

 

다시 왕비로 복위되어 짧은 생을 누리다가 34살에 병고로 승하하였다.

 

복위된 후 왕후는 머물던 청암사에 큰 호의를 베풀어 수도산 일대를 보호림으로 지정하고 전답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대웅전 앞 석간수가 흐르기에 찍었는데 기묘한 작품(?)이 되었다.

 사진을 보고는 누구라도 흘러 떨어지는 물줄기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대리석이 뜨거운 고열에 녹아 내리다 굳어 버린 것 같다. 

다시 찍을 수 없는 귀한 사진이지만 그닥 맘에 들지는 않는다. 

 

 

 청암사에서 폐비 민씨를 위해 한옥을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극락전이다. 여염집처럼 일체의 단청이 없다.

 물론 현재의 건물이 그 때 지어진 건 아니다.

 

 

 

MBC에서 방영된 <인현왕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제목은 인현왕후인데 실제로 는 장희빈이 더 주인공인 드라마다.

같은 예로 <선덕여왕>은 선덕여왕보다 미실이가 실질적인 주인공처럼 진행되었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나는 고현정이 선덕여왕인 줄 알았다.

 

인현왕후 역의 박순애도 장희빈 역의 전인화도 이 드라마가 인생작이었다.

이후로 박순애는 소리없이 사라지더니 소리없이 잊혀 갔다. 인현왕후의 정갈하고 단아한 인상만이 남아 있다.

 
 
 
 

                빌 더글라스 : Hy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