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팔공산 환상의 단풍나무거리

설리숲 2021. 11. 16. 23:13

 

나는 단풍나무를 젤루 좋아합니다.

근래 배롱나무에 꽂히긴 했지만 역시 으뜸은 단풍나무입니다.

선연한 가을의 붉은 잎도 물론 좋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여름의 초록 잎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

 

소싯적엔(?) 그저 단풍이겠거니,

차도 막히고 불편한데 무신 단풍놀이고?

북적대며 가을 나들이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까짓 게 다 뭐야. 동료들과 방에 처박혀 고스톱으로 단풍놀이를 하곤 했습니다.

 

이제사 단풍, 그리고 다른 가을의 모든 것들의 아름다움을 깨닫고는 행여 가을을 잃어 버릴까 문밖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청춘시절, 그것이 조금 억울하기도 하고 어리석었던 자신을 질책하기도 합니다.

 

 

 

팔공산 단풍길을 일구월심 기다려 다녀왔습니다.

파계사에서 동화사까지 이십 리에 이르는 약 8km 지방도는 그야말로 <환상의 단풍거리>입니다.

언제부턴지 우리나라 도시의 가로수는 거개가 벚나무가 주종이 되었지만

그 트렌드를 무시하고 이렇게 단풍나무를 가로수로 심을 생각을 한 사람은 누구인지.

그 아나키스트적 혜안을 지닌 사람을 찬미합니다.

 

 

아침 일찍 나서니 안개 자욱한 길은 한산한데 해가 퍼지기 시작하자 차량들이 밀려듭니다.

주로 동화사를 가려는 관광객들인데 가는 길에 이렇게 단풍의 비경이 펼쳐져 있으니 너도나도 차를 세우고 내려 사진을 찍습니다.

차들은 밀려드는데 이런 불법주정차까지 더해져 도로가 아수라장이 됩니다.

사람들이야 아우성이라도 단풍잎들은 가을 햇살을 받아 눈부신 화양연화의 자태를 발산합니다.

What a wonderful world!

영주 부석의 노란 은행잎들이 그랬듯이 세계로부터의 자신의 퇴장을 이렇게 화려하게 장식하는 이들은 얼마나 멋진 존재들인지.

 

 

화려한 가을은 이제 스러지고 조락의 계절입니다.

파티가 화려할수록 그것이 끝난 후의 공허함은 더 큰 법입니다.

이제 이 길도 고요해지겠지요.

나뭇잎들은 저들끼리 스산하게 몰려다니다 어디론가 흔적 없이 사라지겠지요. 그 과정은 우리네 누구에게도 관심 없이 조용히 이루어질 테죠.

 

自然이니까.

 

 

 

 

 

 

 

 

 

 

 

 

 

 

 

 

 

 

 

 

 

 

 

 

 

 

 

 

붉은 색채만 접하던 눈은 초록 잎으로부터 싱그러운 힐링을 합니다.

 

 이곳 단풍나무는 잎이 작은 애기단풍입니다. 보통의 단풍보다 더욱 이쁘고 아름다워요.

 장성에 있는 백양사 단풍나무도 그래서 좋아합니다.

 

 

 

 

 

 

 

 

화려한 축제를 끝내고 이젠 고요히 겨울로 들어가겠지요.

 

 

 

 

    장재인 :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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