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강렬한 8월.
산천초목, 그리고 사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기운도 가장 강렬하게 발산하는 계절.
사람의 일생으로 쳐도 절정으로 치달아 가장 빛나는 시절이다.
그 절정을 넘어서면 서서히 조락이다.
원치 않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우주 삼라만상의 섭리.
이 계절이 스러지기 전에 우리는 그것을 누려야 조금이라도 덜 억울하겠지.
섬은 그야말로 절정의 태양빛이 작렬하고 있었다.
덥기도 덥지만 그래서 아름다운 여름, 그리고
섬, 바다.
진정으로 여름을 누리려거든 섬으로 가자.
뜨거운 빛이 무작스레 쏟아지는 곳.
이 길을 처음 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이 길고 지루한 이 길 새만금방조제.
방조제에서 보이는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의 고군산열도.
무언가 베일에 가려져 있는 듯한 신비한 느낌이랄까.
예전에 갔었던 기억도 가물한데 선유도는 그 사이 많이 변했다.
태양열과 물빛은 여전하지만 변한 건 역시 사람의 일이다.
관광객 바글대는 군산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려 건너던 역사는 사라지고
바다 위로 길게 뻗어 나간 새만금방조제 위로 차들이 질주하여 건너간다.
북쪽의 군산, 동쪽으로 김제, 그리고 남쪽으로는 부안. 세 방향으로 뻗어 있는 길로 차들이 부지런히 드나든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새만금방조제의 건설 목적이 결국은 고군산열도로 들어가는 것이었을까.
신선이 놀았대서 선유도(仙遊島)라고.
예전엔 자연의 모습 그대로여서 이름처럼 명승지였을 테지만 관광객이 들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그들의 구미에 맞게 리모델링한 상태라 선유도라는 이름이 조금은 무색하다. 원래가 그리 크지 않은 섬에 각종 위락시설과 건물들이 들어서니 더 비좁아 보인다.
그래도 여전히 바닷물은 쉴새없이 밀려왔다 밀려가고, 예전의 그 새는 아닐 것이 분명한 갈매기들의 군상도 여전하다.
이 섬의 중심지요 상징이랄 수 있는 명사십리 해변도 여전히 아름답다.
그토록 뜨겁게 이글거리던 태양이 먼 바다 저쪽으로 떨어지는 저녁황혼의 몽환은 말해 무엇하리.
이 섬의 백미는 석양과 아침 여명이다.
기실 다른 것들을 나는 그닥 기대하지 않았다.
그것이면 족하지.
서쪽 해변의 옥돌도 여전했다. 이곳에 서 있노라면 사그락사그락 옥돌을 헤집고 드나드는 파도소리가 꿈속인 듯 아련하다.
옛 풍경 하나가 금세 생생하게 달려든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았다.
들고나는 파도에 모오리돌 사각이는 해변
물속에 몸을 잠그고 그가 자꾸만 웃는다
- 바보 바보 물이 무서운 거지?
조약돌 하나 날아올 것 같다
이쁘다
젖은 머리칼이 이쁘다 바보바보 웃는 눈이 이쁘다 추워 파래진 입술이 이쁘다 젖은 옷 찰싹 달라붙은 몸매가 이쁘다
저렇듯 어린애처럼 천진한 모양을 내 언제 보았더냐 싱싱한 해초같다
넋을 잃고 취해 있는 내게 그가 무언가를 던진다 윤초시네 증손녀딸이 조약돌을 던지듯이
- 이게 뭐야?
내가 묻는다
- 말미잘
그렇게 답하고는 또 웃는다
엉거주춤 그것을 줍는다 불가사리다 몸이 온통 뻘건 불가사리
-바보야 불가사리다 말미잘 아니다
-아냐 불가사리 아냐 말미잘이야
그녀가 깔깔 웃으며 물 안으로 더욱 몸을 잠근다
그래 네가 말미잘이라 하면 말미잘이지
오늘은 네가 공주다 네가 여신이다 너는 못할 게 없다
말미잘 같은 여자
하얀 달빛 화안히 내리는 골짜기에 소슬바람이 분다. 잠은 안 오고 想念만 어지러운 밤.
자꾸만 기도하고픈 밤이다.
말미잘 같은 여자야 그래 어쩌려구
다 잊자 소슬바람에 날려 버리자 흐르는 물은 거꾸로 돌아갈 수 없는 것
우리 삶도 그러하지 않겠느냐 한번 가면 만날 수 없는 것
그게 자연의 법칙이니 우리 거기 순리에 따르자
그리고 이내 다음 계절이 바투 다가오고 있었다. 그 기세 좋던 뜨거운 정열은 어찌 이리 허무하게 스러지는가.
불타는 사랑도 쉽사리 사그라드느냐.
꽃이 지면 허공은 새롭다
새 그림자 지나가면 물이 더 맑다
남으려 하는 것은 욕된 것
머물려 하는 것은 아직
너를 넘어서지 못한 것
삭발한 산을 따라
기다리는 이 없는 곳으로 떠돌리라
마돈나 : La Isla Bon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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