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들고 나가서 먹어

설리숲 2021. 3. 3. 08:30

어렸을 때부터 귀가 따갑게 듣던 말중의 하나가

먹을 땐 앉아서 먹어라, 서서 먹으면 상놈이다.

 

그 학습효과 덕분에 여전히 음식은 모름지기 양반처럼 앉아서 먹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이러면 꼰대 취급받기에 십상이다)

 

언제인지 테이크아웃(Take Out)이란 새로운 문화가 침투하더니 지금은 아주 자연스런 패러다임이 됐다.

 

Take out!

얼핏 세련된 말 같지만 우리말로 하면 ‘갖고 나가!’

돈 주고 사 먹는 손님이 갑을 관계에선 당연히 갑이지만 우아하고 고상하게 앉아서 못 마시고 밖으로 쫓겨나는 모양새다. 이거 정말 맘에 안 든다.(역시 꼰대 기질이 있는 건가)

 

 

 

아마 90년대 말쯤에 들어온 스타벅스가 그 시초가 아닐까 한다. 낯선 문화충격에 첨엔 생경스러웠겠지만 이젠 그게 더 세련된 문화로 역전되었다.

아예 테이블 없이 테이크아웃으로만 운영하는 조그만 커피점이 부지기수다.

예전엔 회사 그만두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머 하던 것이 이젠 커피점이나 하지머로 바뀌었다.

너도나도 죄다 커피점. 한 집 건너 커피점이다.

 

 

회사가 많은 광화문 일대의 점심 무렵은 종이 텀블러 들고 방황하는(?) 사람들 일색이다.

걸으며 마시는 사람에 가드레일에 기대서서 마시는 사람, 쪼그리고 앉아서 마시는 사람들...

어른들 교육대로라면 죄다 상놈들인가?

 

 

어차피 요즘 시국이야 버젓한 카페라도 안에서 못 먹고 갖고 나가야 한다.

어쩔 수 없지만 이거 맘에 안 든다. 날이 추워 몸도 녹일 겸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려고 들어가지만 갖고 나가란다.

밖으로 나가면 어디서 먹노? 길거리 서서 마스크 벗어야 되는데 그것 또한 행인들에게 눈치 보이고 께름칙하다.

 

에이 차라리 안 먹고 말지 뭐 먹고 살 거라고.

집에 가서 삼둘둘 커피나 타 먹자.

 

 

2021년 올해부터 카페에서 종이컵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는데(2019년) 그 법을 시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종이컵은 더 많이 소비해야 하는 현 상황이다.

 

 

아무튼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이상하고 불편하고 추운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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