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우리 또래 시골촌놈들의 로망 중의 하나가 기차였다.
말만 들었던 그 기차를 나는 중학교 2학년 여름에 처음 타 보았다.
그 설렘이라니.
첫 경험은 늘 그렇다. 나이 40이 넘어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을 때도 역시 그랬다.
첫 경험의 설렘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그것들은 너무 빨리 사라졌다.
비둘기와 통일호 무궁화 등으로 등급을 나눴던 시절도 잠시, 그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렸다.
정신없이 달리는 세상.
그래도 ‘기차’라는 단어는 아직 건재하다.
이젠 증기로 움직이지 않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기차(汽車)라고 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신조어가 날마다 양산되는 이 시대에도 ‘기차’는 남아 있으니 대견하다고 할까. 혹은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버리지 않으려는 우리의 마지막 자존심이거나 보루일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흥성하게 사람과 물자를 실어날랐던 중앙선 구둔역이다.
오래전에 버려진 이 작은 폐역이 그나마 사람들 머리에서 잊히지 않는 것은 몇몇 영화촬영지로 알려져 있어서다.
그것만 아니면 그닥 볼 것도 없고 그저 허허로움 뿐인 이 촌동네에 어느 발길 하나 들이밀까.
오직 옛 정서 하나 그리워 이따금 들러보는 폐역.
첫사랑의 기억처럼 첫 기차의 기억도 단지 기억일뿐 절박함은 없다.
괴로움없이 잊을 수 있으면 행복이지.
억울하게도 멀어져가는 것들은 고운데
다가오는 것들은 당최 정나미가 들지 않으니 앞서간 세대들도 그러했고 뒤에 오는 세대들도 역시 그러리라 짐작되면 나만 억울해할 건 또 아니다.
간이역 모퉁이의 녹슨 철로
기차가 다니는 철길처럼
속살끼리 부비며
달밤에도 빛나고 있건만
그렇게 소멸되고 싶건만
버려진 철로는 바람과 비와 눈물
적막을 견딜 수 없어
소리없이 제 몸을 찔러가며
검붉게 사위어가고 있다.
취한 듯 스러지고 있다.
설태수 <구둔역>
짐 크로스 : Time In The Bot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