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모든 것이 다 사라지지는 않은 달”
모든 달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인디언들의 11월에 대한 개념이다.
그렇군.
들판도 텅 비고 나무도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하고,
버석거리며 말라 가는 우리네 휑한 가슴.
다 사라져 간 것 같지만
집 밖 어디든 서 보면 11월은 텅 비어 있지 않다.
오히려 풍성해 보이는 것은 내 기분 탓이겠고.
충북 영동 백화산 계곡의 석천을 따라 걷는 길은 한 해중 이맘 때가 가장 아름답다.
벼르고 별러 떠난 가을 도보여행.
11월 첫날.
가을 반야사, 가을 계곡, 그리고 낙엽
그리고 비.
새초롬히 내리는 비와 함께 11월이 시작되었다.
촉촉이 물기 머금은 풍경이 운치 있어 맑은 날이 아닌 게 더 행운이었다.
가뿐하니 머릿속도 한결 상쾌하다.
별로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데 <호국의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절대로 이 이름으로 부르지 않을 것이다.
녹음이 무성한 여름도 좋지만 만추의 계곡길이 으뜸이다.
사라지는 준비를 하는 자연의 마지막 배려가 풍성하다.
조락과 비가 함께 했던 만추의 서정.
계곡에서 올려다 본 문수암
문수암에서 내려다 본 계곡.
신록이 창창한 여름날 하얀 백로 두 마리가 날고 있는 걸 보고 그 신비로운 풍경에 잠시 정신을 놓았던 적이 잇다.
그날 문수암에서 어떤 여인이 백팔배를 하며 흐느낄 때 나도 덩달아 울었었다.
11월의 시
모두 떠나는가
텅빈 하늘 아래
추레한 인내만이
선을 긋고 있는데
훌훌 털고 사라지는가
아직도 못다 지핀
詩들이 수두룩한데
가랑잎 더미에
시름을 떠넘기고
굼뜬 나를 버려둔 채
황급히 떠나야만 하는가
임영준
그리고 월류봉의 절경.
중국 무협영화에 나오는 그림 같다. 가히 최고의 명승이다.
11월은 잔인한 달?
개그맨 박지선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충격과 함께 몹시 우울하다.
거슬러 올라가면 서영춘, 유재하, 김현식, 함중아가 11월 1일 사망했다.
김정호 최병걸 김자옥 신성일 구하라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11월 사망했다.
11월 아닌 다른 달에 죽는 사람도 수가 다 비슷하지만
유독 11월에 사망한 사람이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건 이 계절이 주는 무겁고 우울한 감성 때문이리라.
안날 밤은 아이들이 할로윈 축제라고 시끌벅적했나보다.
지하철에서 본 아가씨 둘도 얼굴에 귀신 분칠을 했다.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나고 악령이 출몰한다는 10월 마지막 밤을 보내고 새로이 새해를 맞이한다는 서양의 축제.
우리가 느끼는 ‘우울한 11월’은 그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 사라지지는 않은 달이다.
남아 있는 자가 훨씬 많지 않은가.
Guns N Roses : November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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