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만경평야의 들판과 코스모스

설리숲 2020. 10. 3. 21:45

이런 날은 더 쫄쫄 굶게 마련이다.

추석이라고 음식점은 거개가 문을 닫는다.

가정으로 안 돌아가는 홀로족이나 먼 이방에 와 있는 외국인들은 긴 연휴가 좋지만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로 아예 폐점을 한 식당들도 훨씬 많다.

 

이런 때 편의점은 참 반갑고 고마운 상점이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느끼는 애잔한 감정.

이런 날에도 집에 있지 못하고 일하고 있는 점원이나 아르바이트생들.

삶이 팍팍한 건가.

전에는 그렇게 동정을 했었는데.

생각해보면 친지들 모인 자리에서 대답하기 싫은 질문 폭격을 받는 것보단 탈출해 나와 일하는 게 홀가분하고 편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김없이 들판은 이리도 가을이 가득 찼다.

가네 마네 모이네 마네 사람들만 안달복달 속끓이지 계절은 왔다가 또 가고.

 

김제시 광활면이다.

광활면(廣活面)의 한자는 다르지만 어쨌든 참 광활(廣闊)한 평야의 고장,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일망무제 곡창지대다.

바다 앞에 섰을 때와는 또다른 광막한 상념.

과연 세상 모든 것의 종착지는 사람이겠구나.

 

 

 

 

 

이 누런 황금들판을 가로지른 꽃길이 있다.

‘코스모스4백리길’이라고 지도에도 표기된 길이다.

왜 4백리길이라 했는지는 모르지만 실제로는 약 8km 정도 되는,

702번 지방도 길가에 지금 코스모스가 절정이다.

 

 

 

실은 내 질부 하나가 친정이 김제 이곳이다.

가을이면 코스모스길이 죽여준다는 말을 들었던 터여서 언제 한번 가보려고 맘먹었었다.

코스모스, 내가 좋아하는 꽃.

신이 제일 먼저 만든 꽃이 코스모스라고 한다. 수없이 업그레이드해가며 많은 꽃을 만들고는 맨 마지막으로 만든 건 국화라고 한다.

따라서 국화는 완성도가 뛰어난 완벽한 꽃이고, 코스모스는 가장 어설픈 초기 실험작인 셈이다.

국화도 물론 빼어나게 아름답지만 코스모스 이 원초적인 꽃이 나는 제일 좋다.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소녀가 청초하게 예쁘다.

 

 

 

이제 저 넘실대는 들판도 텅 비고 지금은 가득 찬 가을이 가면 코스모스도 사라지겠다.

그 짧은 날들이 머물러 있는 동안 나는 내 사랑하는 이 여인들을 많이 찍어 둬야지.

인생의 허망함은 멀리 있는 것에서 느끼는 것이 아님을.

 

 

 

 

 

         가을날

 

                                  김현성

 

   가을 햇살이 좋은 오후
   내 사랑은 한때 여름 햇살 같았던 날이 있었네
   푸르던 날이 물드는 날
   나는 붉은 물이 든 잎사귀가 되어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을 해야지
   그대 오는 길목에서
   불붙은 산이 되어야지
   그래서 다 타 버릴 때까지
   햇살이 걷는 오후를 살아야지

 

 

 

 

 

조용필 :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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