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추자도 올레길

설리숲 2020. 9. 11. 00:54

내 평생에 추자도를 가보리라고는 꿈도 꾼 적 없었다.

그저 남해바다에 절해고도가 하나 있지. 옛날엔 유배지였다지. 본토와 제주도의 중간쯤에 있다지. 막연하고 먼 미지의 섬이었다.

 

시쳇말로 대박이다. 막연한 이어도 같은 그 섬에 내가 들어갔다.

여행을 다니면서 다음 주는 어디로 갈까 대강 얼개를 잡고 서너 곳 후보지를 생각한다.

이번에 예정에도 없는 이틀간의 휴가가 생겨 버렸다. 갑자기 맞닥뜨린 휴가에 당황하여 생각을 정리하다가 뜬금없이 추자도가 떠올랐다. 태풍 ‘마이삭’이 전국을 휩슬고 있었다. 마이삭의 진로를 주시하다가 추자도가 튀어나온 것이었다.

아 그럼 저길 가봐야지, 태풍이 끝나면 배도 출항하겠지.

 

마이삭과 뒤이은 하이선 사이의 이틀간을 그렇게 해서 추자도에서 보내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추자도’하면 김추자를 연상하곤 했다. 이후로도 내내 그럴 것이다.

 

추자도는 현재 제주도에 속해 있는 부속 섬이다. 거리는 멀지만 제주도의 행정관할지다. 그래서 추자도의 트레킹코스가 <재주올레길18코스>다. 이 코스를 걸으면 추자도를 다 보는 것이다.

 

 

 

 

 

 

 

 

날이 좋아 바다의 색은 시종 푸르렀다.가끔 태풍이 지나간 흔적이 보였다. 길은 특별하지는 않다. 마을과 마을 바다와 마을을 이어주는, 이곳 사람들의 생활영역의 하나다. 어디에 있든 바다가 보인다. 여행객으로서의 풍경은 매력적이지만 이 단조로운 풍경으로 접하여 매일 산다면 정말 따분하고 지루할 것이다.

 

 

 

첫날은 신양항에서 추자항까지 걷고 추자항에서 숙박을 하다. 내가 가장 기대를 했던 곳이 나바론 절벽이었다. 상추자도 서쪽에 깎아지른 절벽이 이어져 있다. 그 험준하기가 1961년 영화 <나바론 요새> 같다고 하여 그 이름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 하늘길이 절경은 좋은데 과연 험준하여 철제와 목제로 설치한 데크 계단 오르내림의 연속이었다. 힘든 건 그나마 견딜만하더라도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엄두를 못 낼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힘든 걸 극복할지도 모르겠다.

 

 

 

 

첫날은 날이 좋더니 둘째 날은 출발할 때부터 잔뜩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새로 올라온다는 하이선의 영향이라 짐작했다. 가끔은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한다. 불안하다. 우산이나 우비 등 비에 대한 준비물이 전혀 없었다. 비가 온다면 그대로 흠뻑 적실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져 험준한 하늘길을 힘든 줄 모르고 주파했다. 덕분에 예정보다 빨리 신양항에 도착했다. 비는 안 맞아 다행이었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배는 오후 4시에 출항하는데 이제 겨우 11시다. 그보다도 태풍이 올라오는데 배가 뜰 수 있을까 하는 새로운 불안감이 생겼다. 다음날에야 제주도에 도착한다니 오늘은 별 문제 없겠다는 자위를 하면서도 만약 배가 못 뜬다면 태풍이 완전히 지나간 화요일까지 이곳에 묶여 있어야 한다는 기우에 혼자 조바심냈다.

 

그렇게 조바심도 다 지나고 배난 예정대로 출항했고 나는 내 추억에 또하나의 여정을 기록하게 되었다. 정말 내 인생 리스트에 없었던 그 섬 추자도. 그렇지만 언제 또 다시 갈 일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녁노을은 어디나 신비하고 아름답다, 붉은 노을을 안고 있을 때 진정 살아 있는 희열을 느끼곤 한다.

 

 

추자도엔 농협이 없다. 농사지을 땅뙈기 하나 없으니 당연 농민도 없고 농업협동조합도 없다. 농협 아닌 수협이 유일한 금융기관이다. 이곳에 많은 건 바다다.

그리고 정겨운 길.

 

 

 

god : 길

 

 

 

한 번이라도

그리움에 빠져본 사람은 안다

혼자가 아니면서도

지독한 외로움을 느낄 때

사람은 누구나

섬이 된다는 것을

멀리 있는 것들은

다 꽃이 되고

꽃이 되어 붉어진다는 것을

작아서 섬이 아니라

외로워서 섬이다.

 

              이상윤

 

 

    한국의 아름다운 길 여든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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