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빨라도 찻잎은 아직 소식이 없다.
여러 해를 차와 더불어 지내본 결과 얻은 미립 하나는 찻잎은 기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해 겨울이 추워 봄이 늦는다고 해서 찻잎이 늦게 나오지 않고, 그 반대의 경우에 찻잎이 일찍 나오지 않는다. 첫 잎이 나오는 시기는 한결같다. 고로 찻잎이 나오는 시기를 계절 추이의 기준으로 삼으면 거의 정확하다 할 수 있다.
대한다원.
우리나라 차밭의 상징 격인 곳이 보성이다. 보성에 차밭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보성차밭’하면 대한다원을 특정하는 명칭이 되었다.
여러 번 지나치면서도 다원 내 방문은 처음이다. 워낙 유명하여 보통의 차밭 사진은 거개가 이 대한다원 풍경사진이다. 직접 가보니 역시 그간 눈에 익은 그 풍경이다. 아직은 3월인데도 방문객이 많다. 찻잎이 돋기 시작하는 초록의 계절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릴 것이다.
딴 세상인가. 대부분이 마스크를 안 썼다. 쓰는 게 옳은지 안 써도 그르지 않은 건지 판단은 못하겠다.
녹차를 좋아하지만 녹차라떼는 좋아하지 않는다. 맨 처음에 기대를 갖고 먹어 보고는 이건 아니다 싶었다. 지나치게 달고 녹차향은 나긴 하는데 텁텁하고 뒷맛은 껄끄럽고.
그 뒤로도 가금 메뉴가 보이면 혹 이 집은 다르를까 하고 먹어 보았지만 역시 아니었고.
여러 번을 기대하고 시람아하기를 반복하면 아예 눈길을 끊었다.
대한다원에 와서 오랜만에 녹차라떼를 먹다. 아예 기대를 안했지마는 먹어보니 역시나 그렇다.
이제는 정녕 영원히 너를 버리려고 한다.
대한다원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나는 제2다원이 더 좋다. 제1다원은 가파른 산비탈이고 제2다원은 경사가 완만해 시야가 좋다. 대부분 관광객은 제1다원으로 간다. 카페와 매점, 화장실 등 각종 위락편의시설이 있다. 입장료 4천원이다. 제2다원은 입장료가 없다. 그런데도 한산하다. 이 한적한 길이 내겐 더 매력적이다. 예전 드라마 <여름향기>가 제2다원에서 촬영되었다. 그래서 이 마을길이 ‘여름향기길’이 되었다.
차밭의 또다른 명소는 봇재에서 조금 내려간 지점의 보성다원이다. 이곳은 보성군에서 오로지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조성하여 관리하고 있는 다원이다. 눈 아래 논틀밭틀 같은 녹색 다원이 저 아래 마을까지 펼쳐지고 멀리 영천 호수까지 한눈에 조망되는 뷰포인트다. 아, 세상은 이리도 어지러운데 세상은 또 이리도 아름답다. 이미 남녘은 봄도 지나 여름이 바투 다가온 듯 후텁지근한 날이다. 곧 연녹색 찻잎이 모도록모도록 피어나겠다. 차향이 그리운 날이다.
슈베르트 세레나데 : 유미숙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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