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동학사의 밤

설리숲 2020. 3. 16. 00:41


어느 계절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 가을인 건 확실한데 이른 가을이었는지 한가을이었는지 모르겠다.

동학사 지구의 한 산장에서 문학카페 모임이 있었다. , 그때가 카페로서도 나로서도 절정기였던 것 같다.

글 쓴다는 사람들 모여야 늘 그렇다. 세상 고뇌와 걱정을 다 짊어진 듯한 태도들. 술 한 잔 거나하게 취하면 또 넋두리들. 그런 것들이 싫지 않았던 것을 보면 나 그 부류의 한 패거리로 한창 문학적인 정열이 차 있었다는 짐작을 한다.

 

게다가 연정을 품었었고 잠시 연애도 했던 그 여인이, 헤어진 그녀가 동학사 그 모임에 온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도 꺼려지질 않았다. 그녀를 만나는 불편함보다는 여러 문우들 얼굴을 본다는 것이 더 끌렸다. 지금이라면 물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은 가지 않을 것이다.

그 밤을 술과 잡담으로 보내고 이튿날 아침 헤어져 흩어질 때까지 그녀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여러 사람들 지껄이는 통에 휩쓸려 웃거나 가끔 눈길을 건네는 것이 전부였다. 참 나도 못났다. 그게 뭐라고. 그냥 평상적인 말마디조차 못할 게 무엇이람. 말 섞는 게 불편했다면 여전히 그에게 미련과 섭섭함 그리고 앙금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

결국은 한마디, 심지어 떠날 때 인사말조차도 없이 완전히 헤어졌다. 그 미안함이 못내 가슴에 우무처럼 엉겨 있었다.

아침의 동학사 계곡엔 안개가 자욱했다. ! 이제야 알겠다. 안개에 젖고 있는 벚나무 잎들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가을도 제법 깊어 있었음을 깨단한다. 다들 보내고 누나 뻘인 여성과 단둘이 동학사를 둘러보았다. 연도에 늘어선 나무들을보며 무슨 나무냐고 묻는 걸 내가 벚나무라고 일러주면서 벚나무도 가을 단풍이 제법 예쁘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가을 아침에 들러보았던 동학사는 전혀 기억에 없다.

이 봄에 다시 동학사를 찾았다. 한번 왔었다고는 하지만 전혀 기억에 없는 낯선 도량. 그 유명한 동학사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감응은 없다. 단지 알싸한 이른 봄의 기온이 주는 청량감과 아직 나목으로 서 있는 벚나무와 느티나무 가로수길이 아주 근사하다. 노랗게 핀 산수유만 아니면 영락없이 낙엽 진 늦가을의 정취다. , 가을!

그해의 가을이 참으로 허랑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이 봄의 이 풍경도 역시 그러하다. 거기에 새봄이 주는 약간의 싱싱한 설렘이 첨가됐다. 지금의 계절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시골의 면소재지 정도면 잘해야 모텔 하나 정도 있고 웬만한 곳은 그마저도 없는데 동학사를 소유하고 있는 반포 면소재지에는 어엿하게 모텔촌이 형성돼 있다. 유명 사찰 하나가 그 지역경제를 크게 좌우하는 것이다. 고창의 선운사. 청도의 운문사, 합천 해인사 등에 지자체가 크게 의존하고 프랜차이즈 관광지로서의 공을 들이는 있는 이유겠다.




 아직은 냉한 숲속 낙엽 속에서 어느 새 상사화가 이렇게 자랐다. 저 푸른 잎이 지고 난 후에 꽃이 핀다. 잎과 꽃이 한번도 만나지 못하는 애틋한 정념의 상사화. 그래서 문학의 소재로 자주 쓰이는 생명.

 그러나 봄꽃들의 대부분이 다 그러하다. 나목에 먼저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시들어 다 지면 잎이 나온다.

동학사 가는 길에 저 상사화가 아주 많은 걸로 보아 사찰 측에서 우정 심었나 보다. 때 되면 상사화의 화려한 물결을 감상할 수 잇나 보다. 



복수초.  눈속에서 노랗게 솟아나는 꽃봉오리만 보았지 저렇게 활짝 벌어진 꽃은 처음이다.







천지엽 작사 서영은 작곡 남미랑 노래 : 동학사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