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천불천탑 운주사

설리숲 2019. 11. 3. 23:50


천불천탑(千佛千塔) 도량 운주사.

옛날에는 정말로 천불과 천탑이 있었는지 모르나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아마 상징적인 숫자일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눈 가는 데마다 발길 닿는 데마다 불상이요 탑이다. 과연 천불천탑의 요새임을 알겠다.












유명 사찰이면 어김없이 입구에 휘황한 상가들이 밀집해 있다. 운주사는 없다. 그렇지. 불법승의 성지에 고깃집이 웬 거고 주점이니 노래방 따위는 머시당가. 절을 탐방하러 가는 사람들이, 혹은 부처를 만나러 가는 사람들이 거기까지 가서 노래방서 노래를 부르고 주점서 막걸리 소주를 마시고 싶은가. 어쩌면 절 측에서도 그런 관광지구를 내심 반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많이 오면 절 수입도 늘어나니까.

운주사 근처에는 휑한 느낌이 나게 그런 가게가 아예 없다. 그런 점에서 여느 절에 비해 많이 불리해 보이기도 한다. 대중교통도 그리 여의치 않으니 큰맘 먹지 않고는 발길이 잘 안 가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쿵짝쿵짝 소음이 없어서 좋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다. 가을도 이만큼 지나가고 있다. 고즈넉한 분위기라지만 가을이고 주말이라 여느 절처럼 관광객이 많이 찾아든다. 단풍 명소가 아닌데도 인파가 많다. 한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묻는다. 오늘 운주사 절에 무슨 행사 있어요? 왜요? 사람이 많아서요.

가을이라 그래요. 이렇게 대답을 했는데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는 아주머니의 표정이 굿.

백양사나 내장사는 지금 발 디딜 틈이 없을 거다.

 











운주사는 와불로 유명하다. 국내 유일의 와불이라 하지만 사천 다솔사에도 와불이 있다. 그곳은 부처가 법당 안에 누워 있다. 운주사는 산등성에 누워 있다. 아니 누워 계신다.

와불이 일어나는 날 새 세상이 도래한다는 믿음이 민중들 사이에 있었다고 한다. 운주사는 미륵불이 오기를 바라는 민중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불상을 만들어 그것이 천불을 이루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운주사의 그 많은 부처의 행색과 표정은 죄다 서민적이고 못생겼다. 그러나 민중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고 말았다는. 부여 미암사에도 거대한 청동 와불이 있고 강화 보문사, 공주 성곡사 등에도 와불이 있다.

 

와불의 의미는 자유분방이다. 틀에 박힌 수행이 아닌 제 철학대로 자유로운 명상을 하고 밥을 먹고 무엇에든지 막힘이 없는 세계를 추구함이다. 그래서 운주사에 산재한 천불도 다 제각각이다. 단정하고 근엄하게 앉은 부처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모습으로 중생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왜 유독 운주사가 자유분방을 추구하는 것일까. 짧은 소견으로 이곳의 지형과 기운에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추정해 본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호남민들의 심성과 분노 섞인 저항감이 스며있지 않을까. 이곳에서 드라마 <추노>의 일부를 촬영한 것도 어쩐지 의미심장해 보이기도 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면 드라마 연출자는 대단히 센스 있는 사람이다.















 


조촐하고 소박한, 그러면서도 자유로운 느낌의 경내를 거닐다.

관광객이 많아서 한적하지는 않았다.

 

 

지구는 공전과 자전을 한다. 조금의 오차도 없는 영원불변의 현상이다.

우리 인간세가 지구처럼 흐트러짐 없는 고정된 현상이라면 얼마나 재미없을까. 사랑하는 연인들의 이별이 없으니 고통도 없고 슬픔도 없고 애상도 없다. 문학이 있을 리 없고, 음악도 미술도 연극도, 심지어는 과학도 수학도 경제관념도 없을 터이니 원천적으로 인간세의 의미가 없을 테다. 그러므로 고착된 진리가 아닌 변화무쌍한 자유분방에 우리는 울고 웃으며 지루하지 않은 삶을 살다 가는 것이다. 미치광이 고호도, 동성애자 차이코프스키도 위대한 예술품을 남긴 근원이리라.

 

이별의 슬픔과 고통이 있으니 사랑이 아름답고 중한 것이겠지.











김홍근 작사 김홍근 작곡 정솔모 노래 : 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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