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때 국태민안을 발원하여 전국에 세 곳의 장안사를 세웠다 한다. 금강산, 경북 예천 그리고 뷰산 기장.
어디까지나 설(說)이다.
유명한 가곡 <장안사>의 금강산은 갈 수가 없으니 부산의 장안사를 둘러보았다. 예천의 장안사는 예전에 두어 번 갔었다.
분단되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을 나는 부러워한다. 불행한 시절이었든 어쨌든 그들은 지금 우리가 말로만 듣는 유명지들을 유람할 수 있었을 테니까. 장안사 모란봉 부벽루 영변의 약산 삼수갑산 개마고원 신고산 해금강 삼일포 몽금포 두만강 압록강 등등.
만약 내가 그 시절에 살았다면? 지금 생각으로는 경개 좋은 산천을 돌아다녔을 거라 추정하지만 당시의 시대상황은 그러기에 제약이 많았을 것이다. 한군데 정착하려는 인간 본성이 아직 강하고, 타관객지를 떠도는 생을 터부시하던 시절이라. 고향을 떠나 먼 길을 가는 일탈은 거의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살기 위해 버르적거려야 하는 보통 인생들에게 여행이란 별 가치도,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생각이 있더라도 팔도유람은 어느 정도 재력이 있는 족속들이나 가능한 것이고, 그럴만한 가치관을 가질 정도면 또 상당한 교육과 식견을 갖춘 소수의 금수저들만이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도량 안팎으로 봄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장안사를 둘러보면서 나는 엉뚱하게 분단 이전에 살았으면 좋았겠다는 상념에 빠졌다.
도량에 홍매화와 청매화들이 활짝 피었다. 대웅전 앞 기단 밑에 노란 수선화도 피었다. 눈도 없고 혹한도 없는 따뜻한 이번 겨울이었지만 이런 봄 풍경을 대하니 여지없이 반갑고 설렌다.
절 뒤쪽으로 오솔길이 있어 사찰측에서 '원효대사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도 홍매화가 많이 피었다. 매화는 그렇다 쳐도 생강나무꽃과 진달래까지도 활짝 피었다. 진달래는 아주 이른 개화다. 올해도 전의 어느 봄처럼 모든 봄꽃들이 일시에 피는 봄이 될지도 모르겠다.
3·1절이다. 오늘 같은 날 가곡 <장안사>를 포스팅하는 일이 씁쓸하다. 작사한 이은상도 작곡한 홍난파도 대표적인 친일인사다. 통탄할 일이지만 우리 음악과 문학계에서 이들을 배제하면 자료가 거의 없을 정도이니 그들의 업적을 부정할 수 만도 없다.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과오가 여전히 이어져 오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고 친일친미 정부가 권력을 잡아 휘두르며 이들 친일파 인사들을 중용하고 이들은 또 권력에 아부하여 영달을 누려 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우리 가곡 중 이은상이 작사하지 않은 노래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친일친미정부에 눈엣가시 같은 인물은 죄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학교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다. 우리는 맨 이은상 홍난파를 배우며 학교를 다녔다. 졸업한 지 오랜 현재는 어떤지 모르겠다.
봄은 와 있는데 잔인한 봄이 될 것 같다. 장안사도 코로나 역병을 비켜갈 수 없어 사천왕문 앞에 방명록과 소독제를 비치해 놓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대구 영천 부근의 고속도로 모습이다. 차가 없다. 한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손으로 스마트폰 사진을 찍는다. 하면 안되는 매우 위험한 짓이지만 앞뒤로 차 한 대 없는 텅 빈 도로 상황이라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이 넓은 길을 나 혼자 전세낸 것 같았다. 천천히 20km로 달려도 민폐가 되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고속버스를 탄다 해도 버스 승객은 나 혼자였을 것이다. 시국이 뒤숭숭하다.
건천휴게소에 산수유꽃도 화사하게 피었다. 이것도 아주 많이 이르다.
봄은 봄이로되 정정당당하지 않은 얄궂은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 엄정행 노래 : 장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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