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용인 한국민속촌 겨울비 내리는 날

설리숲 2019. 12. 12. 00:56


 한국민속촌(당시엔 용인민속촌)엘 처음 갔던 때가 1981년이었다. 1974년 개관했으니까 거의 초장기였던 셈이다. 그때의 기억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명절이라 가족들이 다 모였고 매형의 즉석 제안으로 택시 여러 대를 나눠 타고 매형의 주도하에 다녀왔으므로 단지 수동적으로 따라다녔을 뿐이다.

 

실로 오랜 만에 민속촌을 방문했다. 실낱같은 기억으론 당시에는 열병하는 병사들처럼 오와 열을 맞춰 초가집 기와집이 배열되었던 것 같았는데 다시 가본 민속촌은 그대와 사뭇 달라진 것 같다. 삭막한 배치를 헐고 나무와 정원, 그리고 담장과 길을 그럴듯하게 리모델링했다. 달랑 건물들만 전시해 놓아 삭막했었던 기억인데 지금은 참 운치 있는 제대로의 민속마을이다.

 

하루 종일 겨울비가 내렸다. 가뜩이나 겨울풍경은 삭막한데다가 비마저 내리니 더욱 우중충하다. 그래서 관람객들의 우산이 더욱 새뜻하게 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를 설정하여 조성한 민속촌이지만 나 어릴 때의 모습이기도 하다. 마루 밑에서 풍겨 나오는 연기가 그렇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기압이 낮아 연기는 자꾸만 마당으로 깔렸다. 하릴없이 마루에 앉아 초가지붕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지지랑물을 바라보며 시간을 죽치던 기억들. 어느 때는 지지랑물을 타고 지렁이가 툭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 날 바자울에는 검은 목이버섯이 여기저기 돋아나 그날 저녁의 주 반찬이 되곤 했다.

 

의식주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식()이다. 옷은 안 입어도 죽지 않고 집 없어도 죽지는 않는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 이렇게 절박한 식이니 한국인의 생활에 반드시 있어 온 게 항아리요 장독대다. 민속촌 유의 전국 어느 명소를 가도 이 장독대가 빠지지 않는다. 한국인은 메주와 장, 그리고 김치의 민족이다. 그것을 빼놓고는 한국을 말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다.

 

겨울비가 내리는 엣 정취의 길.

깊고 긴 겨울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촉촉하게 비맞고 피어난 겨울 진달래.

 이런 계절 이런 풍경에서 화사한 건 관광객들의 우산과 진달래 뿐이로다.

 

 

 

 

 

 

 

 

 

 

 

 

 

 

 

 

 

 

 

 

 

 

 

 

 

 

 

 

 

 

 

 

 입장료가 2만원이다. 많이 비싸다.

한국민속촌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공기관으로 알기 십상이지만 개인소유의 사설 관광지다. 알고 나면 몹시 기분이 상할 테지만 한국민속촌은 원래의 주인이었던 사람으로부터 박정희가 빼앗아 지금의 소유주에게로 들어간 것이다. 물론 박정희 박근혜 부녀의 인척인 인물이다. 비싼 입장료라 말 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독재 끝에 사라진 인물이고 그 딸은 감옥에 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그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최태원과 노소영의 이혼소송을 접하며 이 지긋지긋한 정경유착의 악폐가 또다시 망령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민속촌 구경은 잘했지만 그럼에도 가슴은 또 이리 무지근하다.

 

 

 

 

 

                      양현경 : 비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