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봉화 세평 오지길, 분천역에서 승부역까지

설리숲 2019. 12. 4. 00:42

 

겨울이라고 조용히 침잠할 수는 없다. 산골에서처럼 겨울잠을 잘 리는 없다. 주말이면 역시 길을 나선다. 어쨌든 겨울은 덥지 않아서 돌아다니기 좋다.

 

여전히 오지로 인식되고 있는 곳 봉화, 그리고 승부역 양원역.

근래 트레킹 코스로 새로이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예전엔 이 곳에 길이 없었다. 분천에서 승부는 거리는 가까워도 길이 없어 자동차로 1시간 에둘러서 돌아갔다. 오직 기차만이 물길을 따라 왕래했다. 기차로 기껏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그런 것을 새로이 길을 만들어 도보꾼들이 많이 다녀가곤 한다.

 

 

 

 

 

 

 

 

하늘도 세 평이고 꽃밭도 세 평이라는 말 그대로 오지다. 그래서 낙동강 물길의 비경이 보존되었을 것이다.

 

 

 

 

 

이 길은 물과 기차와 사람이 내내 동행한다. 험준한 산간지역이라 철도 놓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을 테고 그나마 물길이 평탄하니 그곳을 따라 기찻길을 놓았다. 이젠 사람의 오솔길이 함께 한다.

 

 

 

 

 

 

 

걷는 데 서너 시간 소요되니 혹시 출출할까 분천 역 앞에서 전병을 샀다. 5천원이라기에 양이 너무 많지 않을까 했는데 중간에 꺼내 먹으려고 열었더니 겨울 두 롤 썰어 넣었다. 피식 웃는다. 관광지였음을 상기한다. 아직 식지 않은 전병과 함께 구멍가게에서 산 탁주까지 한 잔 곁들이니 그런대로 괜찮다. 내 자의로 술을 산 것도 참 오랜만이다. 막걸리 두 잔에 취기도 오르니 쌀쌀했던 몸도 훈훈해지는 느낌이다. 

 

 

 

 

 

 

 

 

 

 

심심치 않게 여행자들을 만나고 스쳐지나간다. 나도 나지만 이런 오지에 오는 사람들은 여행의 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번잡하지 않은 낯 선 곳에서 홀로 사색을 즐기는 것은 여행의 백미다.

 

 

 

 

 

 

 

 

 

 

 

 

 

 

 

 

 

 

 

 

 

 

 

 

 

 

 그 길의 끝에 기다리고 있을 듯한 희망들.

 

 

 

 

 

 

승부역에서 커피를 판다. 메뉴에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푸치노 카패모카가 있어서 카푸치노를 달라 했더니 카푸치노는 없단다. 메뉴를 가리키며 저기 써 있잖아요, 그랬더니 불문곡직 카푸치노 없어요 시치미를 뗀다. 그럼 뭐 있어요? 카페라떼는 돼요. 그럼 그거 주세요.

애초 맛이란 걸 기대하지는 앉았다. 그런데 너무 하지 않은가. 주인여자는 너무도 당당하게 마트에서 파는 봉지 카페라테를 뜯어 저어준다. 전에 한 통을 사서는 도대체 맛이 없어 아직도 방에 태반이 남아 있는 그 카페라테다. 다시는 돈 주고 사먹나 봐라, 했더니 그걸 돈 주고 사먹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물을 한강으로 넣어 맛없기가 여간 아니다. 그래도 2천원이나 주고 산 걸 버리지는 못하고 어물어물 다 마시긴 했다. 보통의 카페라테가 4~5천원이니 2천원이면 그래도 가성비가 그리 떨어지는 건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할 밖에. 과연 시골은 시골이다.

 

 

 

 

 

 

알 수 없는 건, 분천역의 뜬금없는 산타 테마다. 산타와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곳에 어찌?

 

 

 

 

 

 

겨울이 시작되었다.

강원도 산골에 살면서 겨울의 기억이 워낙 강해 낙엽이 지면서부터 근거 없는 불안과 초조 걱정들이 덮쳐오기 시작한다. 이것도 일종의 트라우마일까.

 벌써 마음은 꽃피는 봄을 그린다.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중, 옛 사랑을 위한 트럼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