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

설리숲 2019. 11. 12. 00:05


아주 짧게 지나가는 계절이다.

이 짧은 가을이지만 같은 가을이 아니다.

지루한 혹서의 여름이 끝날 무렵 코스모스가 피고 고추잠자리가 날면 사람들은 가을의 정취에 설렌다. 이 서늘한 첫 가을이 좋다.

들판이 황금색으로 변하고 뒷산 알밤 떨어지는 소리 들리는 가을이 온다. 이 가을도 좋다.

벚나무와 느티나무가 울긋불긋 물이 들고 단풍잎이 새빨개진다. 이 가을도 좋다.

이어서 나뭇잎이 떨어져 구르고 산기스락에 하얗게 억새가 나부낀다.

곧이어 노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흐트러져 날린다.

그러면서 가을은 끝나가고 새벽마다 찬 서리가 내린다. 집집이 곶감이 매달렸다.

아 각각의 모든 가을이 다 좋다.

 

나는 그 중에서 늦가을이 가장 좋다. 좋기는 뭐가 좋아. 엄밀하게는 가장 진한 가을을 느끼는 때는 들판이 텅 비고 낟가리가 군데군데 섰는 그런 날들이다. 좋은 게 아니고 허무하고 고독한 계절이다.

 

오늘 사무실 앞 거리에 은행나무들이 전부다 요란하게 이파리가 떨어졌어요. 무슨 일이 난줄 알았어요.

어느 해 그녀에게서 그런 문자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은행잎이 죄다 지고 나면 겨울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 은행나무로 유명한 아산 곡교천변이다.

매번 그 시기를 맞추지 못했다. 어느 때는 잎이 다 져 있었고, 어느 때는 아직 시퍼렇게 버티고 있었다.

올해는 제대로 맞췄다. 그러나 고운 은행잎은 아니었다. 노랗게 되기도 전에 이미 떨어져 버리는 잎에, 물든 잎도 그 색이 거무튀튀해 내가 기대한 은행잎은 아니었다. 은행나무만이 아니라 올해는 단풍나무도 그렇다. 강수량과 기온 등 기후가 맞아떨어져야 아름다운 잎들을 생산하는 것이다.


급작스레 기온이 떨어져 제법 춥다, 게다가 사뭇 바람이 거세게 분다. 나비처럼 은행잎들이 흩날린다. 옛 가을, 그녀의 문자처럼 무슨 일이 날 것 같은 나부낌이다. 오후엔 비가 오기로 되어 있어 더욱 을씨년스럽고 쓸쓸하다. 사람이 많아도 이런 날씨엔 나는 더욱더 쓸쓸하다.

 

 인파가 넘실댄다. 한 해중 가장 각광을 받는 짧은 날들이니까. 더구나 이 날은 이 길에서 마라톤대회까지 진행되고 있어 뜀박질 하는 인파까지 뒤엉켜 난리법석이다.

어쨌든 곱지는 않아도 노란 잎들이 만든 터널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가로수가 있는 거리는 그렇지 아니한가.

저 잎들이 다 지는 날 가을은 완전히 끝난다. 떠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심한 계절이다.

 








 풍경이 아름다운 곳은 역시나 사진가들의 무대다. 그이들의 카메라에 내 모습도 무수히 들어 있으리라.





 낙엽 지는 풍경엔 가을여인이 있어야 화룡점정이다. 초상권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이런 사진을 포기할 수 없다. 예쁜 비주얼이라 그러니 기분 좋게 양해해 주리라 믿고는.










사람들은 은행나무 아래서만 복대기다 가지만 곡교천의 쓸쓸한 풍경도 둘러본다.











주현미 & 국카스텐 : 쓸쓸한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