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경강역으로 가는 길 춘천

설리숲 2019. 10. 23. 00:41


춘천에서 나고 자라고 학창시절을 보내고 다년간의 직장생활도 했다.

세상에 대한 견문이 좁았던 그 시절 다른 세계로 나가는 창구는 역시 청량리행 기차였다. 비둘기열차가 있었고 통일 열차가 있었고 무궁화열차가 있었다. 지금은 다 사라지고 전동열차로 통합되었다.

차비를 아끼려고 가장 싼 비둘기열차를 탔다. 남춘천 신남 상촌 백양리 경강 그리고 가평역으로 들어서면서 경기도가 되었다.

무수히 지나다녔던 백양리역과 경강역. 창밖으로 보이는 강 풍경과 여름날의 소박한 시골풍경이 정겹던 기억들. 그 조그만 역사들.

내 언제 이 역들에 내려 저 풍경 속에 서 보리라 했건만 영영 가 보질 못했다. 그 절절함이 가슴에 뻐근하게 차올라 기어이 찾아보았다. 주지하다시피 이들은 다들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난 레일로 전동열차가 다니고 있다. 생각하면 우리네 인생은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점철된 여정이다. 하긴 맘먹은 대로 척척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시선 저 멀리 아득히 사라지는 레일처럼 우리는 욕망과 기대와 아득함을 안고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사는 재미 아니겠나.

 

















맘속의 동경 같던 경강역은 간이역의 지위조차도 없고 다만 이제는 역사(驛舍)만 남아 레일바이크 매표소의 기능을 하고 있다.

나름대로 조촐한 관광지가 돼 있다. 달콤한 카피집이 있고, 철로변에 코스모스가 만발해 있고, 레일바이크를 타려고 왕림하는 연인들과 가족들의 설렘이 있고, 무수히 지나다녔던 내 청춘시절을 소환하는 추억이 남아 있고, 그리고 가을이 있다. 아 간절한 시간들이여. 햇빛 눈부신 이런 가을날은 까닭 모르게 서럽다.










가평에서 경강역을 지나 강촌까지 이르는 강변길이 참말 명품길이다. 아침이라 인적 없는 호젓한 길을 걷노라니 어린 시절 개울가 서덜에서 혼자 놀던 때로 돌아간 듯한 아련한 몽상에 빠진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여기서 세상이 멈추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전철역 중에서 가장 촌동네가 아마 경춘선 굴봉산역이지 싶다. 역 주변에 이렇다 할 마을도 없고 그저 보통의 한적한 농촌이다. 걸어서 한 20분 가야 관광객이 모이는 옛 경강역이니 이런 곳에 전철역은 수지타산은 맞지 않을 터이다.

유정이 서울서 전철을 타고 이 굴봉산역에서 내렸다. 예전에 와본 경험으로 아주 좋은 마을이라며 데이트신청을 했던 참이다. 그녀는 도시인이면서 이런 시골을 좋아한다. 그러나 막상 살 엄두는 내지 못하는 천생 도시여자다.

막연하게 동경하는 것과 실상과의 괴리를 보여주는 표본 같은 사람이다.








루 크리스티 : Saddle The Wind




    한국의 아름다운길 마흔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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