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면서 어느 날 저녁 해가 무척이나 짧아져 있는 걸 깨단한다. 어느 결에 계절이 이만큼 지났구나. 이젠 찬물로 샤워하기가 싫어졌다.
바닷길은 겨울에 걷는 게 좋다. 풍경도 풍경이려니와 특성상 그늘이 별로 없는지라 무더운 여름날의 도보여행으로 단단한 각오 없이는 나서기가 괴로운 것이다.
9월이 되자 그리도 맹렬하던 뙤약볕도 수그러져 한낮에도 걸을만했다.
창원 이명리에서부터 창포마을을 지나 고성 동해면까지 이어지는 바닷길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에 선정된 해안도로.
언제나 그렇듯이 내 마음에 푸른빛으로 각인된 남해바다의 정경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평화롭다. 특히나 햇빛 좋은 날의 바다는 그 푸르스름한 기운이 천지에 가득 차 있는 듯하여 이방인의 객수를 한층 북돋운다. 덥지 않아 마냥 걷고 싶은 날이다. 길은 끝이 없으나 사람의 능력과 시간에는 한계가 있으니 우리는 언제나 벽에 맞닿는 절망을 안고 돌아오곤 한다.
9월이 오고 저녁 해는 짧아져 가고,
시나브로 시간은 가을로 깊어 가고 있는 중이다.
해변은 겨울여행이 더 좋다. 곧 겨울이 온다. 정열로 점철된 여름이 이렇게 가고 있네.
수잔 베가 : Tom's D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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