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충주 하늘재

설리숲 2019. 9. 5. 00:12



6월의 하늘재.

숲은 짙은 초록으로 우거지고 하늘은 맑디맑다. 여름의 절정이다.







경순왕은 나라를 통째로 들어 왕건에게 바쳤다. 태자는 부왕에 불복종해 신라의 재건을 꿈꾸며 궁을 떠났다.

한 서린 마의태자를 동정해 후세 사람들은 경순왕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임금으로서 백성의 안위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함께 더 이상 백성들이 피를 흘리지 않게 하려는 따스한 성은이 함께 하였다. 그런 쪽으로 해석하면 마의태자는 왕족으로서의 기득권을 보전하려 한 비열한 왕자다.

 

덕주 공주와 함께 궁을 떠난 태자는 문경에서 월악산으로 향했다. 남매가 넘었다는 고개가 하늘재다. 하늘재는 영남과 경기를 있는 가장 오래된 교통로라고 한다.

하늘재를 넘어 태자는 미륵사에 덕주 공주는 수안보 근처에 머물며 신라의 중흥을 발원하며 기도를 드렸다. 태자는 미륵입상을 세우고 공주는 덕주사를 세웠다. 월악산 하늘재를 가게 되면 두 곳을 꼭 찾아들 보시라. 천 년의 세월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리. 그러나 그들의 여망은 이루어지지 않고 속절없이 시간을 죽이던 태자는 오대산을 지나 금강산으로 들어가 일생을 마쳤다. 공주는 덕주사에서 여생을 살았다.









[김연아를 닮은 나무]라는 팻말을 붙여 놓았다. 이런 유치한 발상들은 어떻게?



문경 쪽 하늘재 길은 포장도로다. 이 길을 걷는 사람은 하나도 못 보았다. 차를 타고 하늘재 고갯마루로 오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뿐이다.





하늘재는 충주와 문경의 경계선이다. 트레킹은 충주 쪽의 숲길이다. 여름의 짙은 녹음이다. 문경 쪽 길은 오래 전에 이미 포장이 돼 있어서 트레킹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염천의 뜨거운 폭양 아래 아스팔트를 걷는 건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늘재를 가기 위해 차를 타고 오르는 용도의 길이다. 거주하는 주민은 별로 없는데 시내버스도 운행한다.

그러므로 통상 하늘재라 함은 충주 쪽 길을 말한다.

숲이 주는 신비스러운 기운들. 하루 종일 걸으면 눈자위가 초록으로 염색될 것 같다.











이렇듯 정염의 기운을 발산하던 여름도 이제 다 끝나간다.

가을 태풍이 오고 있다고 한다.

주말에 고사포에서 캠핑할 계획이어서 설레고 있는 중인데 연락이 왔다. 태풍이 예보돼 있으니 오지 말라고, 예약금을 환불해 주겠다고.

불의에 시간이 비어 버렸다. 어디로 갈까. 천 년 전 하늘재를 넘어 정처 없이 걸었을 마의태자 남매를 생각한다. 인생의 비애로고.










트라이엄비라트 :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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