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2018 평창대관령음악제

설리숲 2018. 12. 19. 01:00


여름 끄트머리 때면 대관령에서는 큰 음악향연이 벌어진다.

아직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지만 여름에도 서늘한 대관령은 어둠이 내리면 을씨년스럽게 기온이 내려간다.

더위에 지친 심신을 품격 높은 음악으로 힐링하는 게 대관령음악제다. 그러면서 새로운 계절을 맞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 15회 음악제는 폭염이 가장 극악한 때 열렸다. 왜 하필이면?

다시 상기해도 죽을 것만 같은 올 여름 폭염.

 

대관령음악제 스케줄을 죽 훑다가 고른 게 강릉 공연이었다.

손열음의 피아노 협주곡과 차이코프스키 4번 교향곡이 단박에 가슴으로 들어왔다.

729. 어후! 날짜만 봐도 숨이 턱 막히는 듯하다.

한 달 이상을 비 한 번 안 내리고 푹푹 삶더니 그날 영동지방에 소나기 예보가 있던 참이었다. 공연시간이 될 때까지 주위 길을 좀 산책할 요량이었으나 더위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예보대로 과연 금방이라도 쏟아 부을 것 같이 하늘이 시커메졌다. 그럼에도 폭염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커피집에 들어가 더위를 피하며 시간을 죽였다.

 

과연 대가의 손은 달랐다. 왜 손열음이 최고의 스타인지는 현장에서 직접 그 음악을 들으면 안다. 평론가가 아닌 그저 마니아에 불과하니 적절한 표현을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의 열 손가락이 지나가는 곳에 음표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는 생각을 하였다. 기계에서 나오는 음악이 아닌 바로 눈앞에서 듣는 음악이란 경이로운 것이다. 그것도 라흐마니노프다! 솔직히는 피아노협주곡의 최고 걸작이라 일컫는 차이코프스키를 들었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차이코프스키는 정열적인 남자 피아니스트의 힘찬 연주가 더 어울리겠고 손열음의 섬세하고 디테일한 연주는 라흐마니노프가 제격일 것이다.

어쨌든 눈과 귀가 분에 넘치는 호강을 하고 이어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이 연주되었다.

그날의 레퍼토리는 러시아 사람인 지휘자 드미트리 기타옌코에 대한 배려도 있었으리라.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다시 더위가 숨을 막는다. , 이 여름은 언제나 끝나려나.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차창 밖으로 노을이 찬란하다. 문득문득 이런 아름다움 때문에 세상은 살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일상에 지쳐도 무더위가 모 살게 굴어도 북국의 서늘한 바람 같은 음악을 듣고, 이토록 아름다운 붉은 노을에 정신을 휘둘린다는 건 얼마나 경탄스러운가 말이다.

 

열흘간의 긴 휴가. 그 첫날을 이렇게 보냈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2악장 O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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