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사이에 계절이 완전하게 바뀌었다. 입원하는 날 아침 한기가 드는 꽃샘추위여서 겨울 카디건을 입었었다. 겨울이 끝나지 않은 황량한 풍경이었는데 퇴원하는 날 돌아오는 길 연도엔 나무들마다 파랗게 물이 올라 완연한 봄이었다.
수술 후에는 퇴원할 때까지 그냥 무위도식이었다.
병실은 3인실이었지만 룸메이트는 없이 독방이었다. 퇴원하기 전날에야 나머지 두 병상이 다 채워졌다.
TV와 책 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창문 앞에 바로 옆 건물이 막고 서 있는 구조여서 창밖의 봄 풍경도 볼 수가 없었다.
병실을 나와 복도를 두 번 구불아 돌면 휴게실이 있어 책 보는 것도 지루해 어정어정 그곳을 찾았다. 그곳은 그나마 전망이 좋은 편이어서 저 멀리 호암지가 보이고 호안가에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것이 보인다. 바야흐로 벚꽃의 계절이다. 올해는 여러 해 벼르던 창원의 벚꽃을 꼭 보러 가리라 작정하고 버스표도 미리 예매했었는데 사람의 일이란 바로 내일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나마도 미세먼지로 선명하지 않은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내 몸 보다는 이 가장 좋은 계절을 속절없이 건너뛰고 만다는 것에 그만 상심이 되었다. 기분으로는 당장 퇴원해도 되련만.
퇴원하는 날은 계절이 훨씬 흘러가 버려 이미 봄이 다 간 것 같은 아쉬움이 진했다.
그래도 흙사랑 울타리로 둘러친 개나리는 여전히 만발해 있어 온 세상이 다 환하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요 아름다움이라는 해묵은 진리를 절감한다.
날이 포근하고 한낮에는 축축이 땀도 젖게 후덥지근하다. 이젠 차가운 음료가 그리워진다. 냉장고에 좋아하는 레쓰비를 한가득 넣어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몸도 마음도 한없이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어느덧 푸른 5월도 다 지나간다. 여름이다. 겨울보다야 봄이 좋고 봄 보다는 가을이 좋다. 가을보다는 겨울이 좋고 그보다는 역시 또 봄이 좋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적당히 순행하여 살면 그만이다. 행복하니 하고 물으면 선뜻 대답은 못하더라도 불행하니 물으면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다. 아니!
병상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