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레이트리 어답터

설리숲 2019. 5. 28. 23:56


얼리 어답터 (Early Adopter).

최첨단 제품을 먼저 구입해 사용해보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레이트리 어답터라는 말이 있는지는 모르나 얼리어답터의 반대되는 의미라면 나는 진정 레이트리 어답터다.

 

다른 사람들 다 쓸 때 과거별에서 온 놈 모양 관심 하나 없이 지내다가 유행이 다 지나 공급이 끝날 무렵에야 겨우 장만하는 나다. 돌아보면 평생을 그리 살아 왔다.

 

스마트폰을 갖게 되었다. 동네 강아지들도 갖고 다닌다는 그것을 사람이 이제야 구입했다.

2G폰이 불편한 것도 아니다. 전화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세상이다. 실은 핸드폰 자체가 내게 그리 중하지도 않다. 산속에 들면 말은 똥이요, 전화기가 다 무슨 소용인지. 그러고 보면 2G폰도 내게는 진일보한 문명 첨단기기인 셈이다.

 

집을 떠나 여행길에 서면 수많은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 지도나 대중교통정보 등의 요긴함을 절감할 때가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특별히 곤경에 빠지거나 한 적은 없다. 오랜 경험상의 미립으로 잘 지내오긴 했다.

그런데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점점 더 편리한 게 궁박해진다. 그래 스마트폰 GPS만 있으면 좀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랫동안 부정하고 거부했던 그 물건을 산 건 단지 그 이유였다.

 

일단 손에 들고 보니 이 물건도 제법 쓸 만하다. 혼자 있을 때나 버스 타고 어딜 여행할 때 마음껏 음악을 들을 수 있어 또 하나의 즐거움이 추가되었다.

하나하나 편리한 기능을 이용하다 보니 그것 참 괜찮은 물건이로구나 하면서도.

아주 성가신 건 뭔놈의 알림이 그리 많은지 쉴 새 없이 띠리링거린다. 거개는 다 쓸데없는 거다. 얄궂은 건 쓰잘데기 없는 건 줄 번연히 알면서도 궁금해 열어본다는 거다 참. 나도 문명인이 다 됐다.

 

이왕 손에 들었으니 그 기능들을 다 누려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어쩌면 나도 핵인싸가 될지도 모르겠다.

굳이 거부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그저 세월의 흐름대로 물처럼 흘러가는 게 맞다. 그게 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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