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엔 아픈 사람이 참 많다. 어두워진 저녁 시내를 걸으면서 보는 세상은 평온하고 건강하다. 지하철 출구마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퇴근 후 고깃집에서 회식을 하며 왁자지껄 흥겨운 사람들, 노천카페는 젊은이들이 모여앉아 맥주를 마시며 청춘을 즐기고 있다.
병원에서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음을 본다. 아픈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지 우리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정체는 환자들의 집합체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대형 종합병원의 월요일 오전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접수 수납창구와 각 진료과의 로비마다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사람들이 병원에 놀러 오진 않았을 테니 죄다 병이 들어 고통스러운 사람들이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거개가 노인들이다. 세월이 여류하면 신체 각 부위가 수명이 다하는 법이니 50대 이상이라면 몸 어디 한군데라도 안 아픈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가전제품이 오래 되면 낡고 망가져 수리센터에 가 고친다. 그리고 더 쓰다가 결국은 고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려지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도 결국은 하나의 물체인 것이다. 노인들에게 더 이상의 희망은 없어 보인다. 다만 근근이 생을 잇는 초라한 세월일 뿐이다. 그리고는 가전제품처럼 그렇게 되겠지. 생로병사는 궁극적인 인간의 본체다. 사람이니까 형이상학적인 생로병사로 말하지 결국 사물과 다르지 않다.
열흘간 병동생활을 했다. 입원환자들도 다 나보다 노인들이다. 그러므로 어제 포스팅했던 글에서 고급인력을 재생산하여 사회로 투입하는 의사와 병원은 참으로 훌륭하다고 썼지만 기실 고급인력이랄 수 있는 환자는 거의 없는 셈이다. 짧은 여생이나마 고통 없이 살아내려는 슬픈 몸짓이고 의사는 조력자이다.
우리의 생은 어느 결에 여기까지 왔는가. 생후 16개월 되는 내 동료직원의 딸아이의 해맑은 웃음이 어찌나 귀여운지 모른다. 이제 막 말을 배우려고 아빠를 불러 댄다. 그런 아이가.... 우리에게도 그 같은 인생의 첫 시절이 있었거늘.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