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닥터를 위하여

설리숲 2019. 5. 14. 00:08

 

하루에 한 번씩 주치의의 회진이 있다. 자신의 환자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회진 때 의사의 포스는 대단하다. 인턴과 간호사 등의 수행을 거느리고 위풍당당 나타난다. 병실에 간호사가 먼저 들어와 환자에게 교수님의 회진을 알리고 이어서 그가 들어온다. 환자와 몇 마디 수어할 때 수행원들은 보스의 뒤에 도열하고 서 있다.

병원 내에서의 의사의 권위가 느껴지는 풍경이다.

보통 의사를 선생님으로 호칭하는 게 통상인데 이곳은 대학병원이라 교수님이다. 환자들도 그렇게 부른다. 선생님보다는 교수님이 더 권위가 있는 것처럼 여기는 모양이다.

 

내가 싫어하는 세 가지 직업군 가운데 하나가 의사다.

그렇더라도 심신이 고통스럽거나 더구나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가 되고 나면 싫어도 그를 믿고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종교를 부정하고 증오하던 사람도 절박한 생의 한 곳에 서 있게 되면 보이지 않는 어떤 신을 찾는 것이다. 종교는 나약한 인간의 이런 약점이 있기에 존재하지. 절박한 환자는 전적으로 의사에 의지한다. 그는 신이다, 그러니 그 정도의 권위는 세워도 지당하다.

 

내가 의사를 싫어하든 말든 어쨌든 그들은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고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인 것은 맞다. 사심 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나 역시 그들이 위대한 사람들이라는 걸 인정한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지 않는가.

나는 의사 덕분에 고통을 벗었고 심지어는 더 짧아졌을 수 있는 생을 보전했다.

그들은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 나 같은 고급 인력이 사장되는 것은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인류에 커다란 손실이다공장에서 일을 하는 기계가 고장나면 담당자가 고친다. 기계가 어여뻐서가 아니라 일을 시키기 위해서다. 의사는 고급인력을 수리하고 재생하여 사회에 다시 내보낸다. 사회주의 세상이라면 조직의 부품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쳐진 덕분에 나는 다시 세상에 나와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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