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입원수속만 하고 나면 중환자가 된다.
병동으로 올라가 간호사실에 들르니 806호실이라며 환자복을 내어준다. 미처 갈아입을 사이도 없이 간호사가 링거를 들고 병실로 뒤따라온다. 환자복을 입고 팔에 링거를 꽂는다. 방금 전까지 팔팔하게 뛰던 건강체도 이렇게 해놓으면 순식간에 중환자가 되는 것이다. 링거를 꽂으니 행동도 부자유스러워 영락없는 중환자다. 그 행색으로는 오줌이나 누러 가는 거 말고는 그저 병상에 누워 있는 일 밖에 없다.
수술은 다음날 아침에 하기로 되어 있었다. 건국대충주병원을 찾은 것은 그 엿새 전이었다. 그날 거의 하루를 걸려 이곳저곳을 다니며 검사를 했다. 내 단견으로는 필요가 없어 보이는 검사도 포함됐다. X선촬영은 상관없어 보였고 키는 왜 재는지 모르겠다. 병원이 확보하고 있는 의학기기는 한번씩 다 사용하려는 의도처럼 여겨졌다. 그럼으로써 진료비가 더 청구될 수 있으니까? 상식이 일천한 내 무식의 소치이겠지만.
병원밥을 그 저녁에 한번 먹고는 내내 굶었다. 수술의 필수 요건인 금식이다. 이튿날 하루 종일 굶었고 그 다음날이 돼서야 먹을 수 있었다.
일단 입원하여 병상에 누웠지만 편안하다고는 할 수 없다. 무시로 간호사가 들어와 혈압과 체온을 재고 간다. 속의 팬티는 벗으라고 한다. 여러 날 갈아입을 팬티를 몇 장 가져갔는데 퇴원하는 날까지 한 번도 팬티를 입지 않았다.
늦은 밤에 치료사가 와서 관장을 했다. 고추 수술을 하는데 관장이 필요한가. 이것도 내 짧은 생각이다. 난생 처음 관장이라는 걸 했다. 말로만 들었었는데 과연 고통스럽다. 온몸이 까라진다. 수술하려면 제모를 해야 한다고 한다. 늦은 밤 내 소중한 거시기 털을 깎는다.
그리고 비로소 잠자리에 들었지만 편한 잠을 못 잤다. 밤새도록 간호사가 혈압과 체온을 잰다고 수시로 깨우곤 했다. 이것은 퇴원하는 날까지 내내 지속됐다.
관장의 피로도와 함께 몸은 더욱더 쇠해지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제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이 정도면 하룻밤 사이에 반송장이 되지 싶었다.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원에 넣으면 과연 정신이상자가 될 수 있겠다는 걸 새삼 생각한다.
아침 5시가 되자 다시 또 깨운다. 신장과 체중을 재라한다. 고추 수술하는데 키와 몸무게는 왜 필요한 거며 그건 첫날 내원했을 때도 다 했던 건데. 아무튼 웬만하면 병원은 가지 말아야 할 금단의 구역이다. 덕지덕지 피로로 뭉개진 몸으로 수술의 날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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