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완서의 글을 좋아한다. 화려한 미사여구도 없고 현학적인 표현도 없고 그저 엄마가 딸에게 조곤조곤 들려주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가슴 저 깊은 곳을 울린다.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주는 위대한 작가다.
예전엔 그를 잘 알지 못했다. 나 역시 글을 쓴다. 어쭙잖은 잡문 따위도 글이라 하면 말이다. 어느 때 박완서의 작품을 대하고 나의 글이 그의 글과 흡사하다는 걸 느꼈다. 그렇다고 내가 잘 쓴다는 민망한 자화자찬은 아니다. 비슷한 글쓰기의 패턴이라 그 분의 글이 물 스며들 듯 촉촉이 내 가슴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다. 말의 성찬은 없는, 평범하기만 한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가슴이 미어지며 진한 감동을 느끼곤 한다. 나의 롤모델이자 멘토이며 스승이기도 하다.
근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었다. 유명세도 있지만 역시 뛰어난 명작이다.
특히 올케언니의 죽음에 대한 부분이 절절하게 슬픔을 자아낸다. 아들이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아가씨를 엄마는 탐탁치 않아한다. 그래도 어쨌든 아들의 고집에 며느리로 들어온다. 그러나 며느리는 아가씨 때부터 이미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생활이 투약과 병고로 점철된다. 본래 마뜩치 않았던 데다가 병까지 달고 들어온 며느리가 예쁠 리 없다. 엄마는 단 한번도 며느리를 살갑게 대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병고가 점점 더 깊어지며 앞날이 절망적으로 상황이 되면서 엄마는 그간의 성정을 바꾸어 진심으로 며느리를 동정하고 사랑해 준다. 이왕 며느리 된 사람을 미워해 봐야 훗날 회한만 더 클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올케는 결혼하고 1년 남짓의 불행한 삶을 살다가 죽었다. 그것이 박완서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평생 큰 업으로 지니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 꽤 철난 후까지도 폐결핵을 동경하고 미화하는 버릇을 못 버린 것은 올케가 그런 유별난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언제고 폐결핵을 앓는 남자와 열렬한 사랑을 해보고 싶은 게 내가 사춘기에 꿈꾼 사랑의 예감이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중에서
요컨대 박완서의 사랑의 판타지는 폐결핵을 앓는 야윈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는 것이다. 그 끝이 비극으로 끝나기에 더욱 절박하고 애절한 사랑의 서글픔이 그의 판타지였다는 고백을 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상상을 해보지 않았을까. 나는 우리집 앞을 지나 학교를 다니던 얼굴이 백옥 같이 하얗고 교복 밖으로 드러난 팔다리가 유난히 가늘던 그 여학생을 생각했다. 저 누나와 연애를 하면 슬픈 사랑이 되겠다 싶었고 그래서 그 사랑이 몹시도 아름다울 거라는 판타지를 가졌었다. 그녀의 창백한 외모는 참으로 불쌍했었다. 나중에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소년이 겪는 슬픈 사랑이 그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또 한때는 다리를 못쓰는 장애인 소녀와 연애하고픈 시절도 있었다. KBS라디오 장애인 프로그램인 <내일도 푸른 하늘>에 펜팔코너가 있었는데 거기에 내 엽서를 보낸 적이 있었다. 이 정도면 정상적인 사고는 아닌듯하다. 나중에 돌아보니 판타지도 동정도 아닌 쓰레기 마인드였음을 알겠다.
그런 비슷한 사람을 TV에서 접했다. 고등학교 시절 제법 잘 나가던 가수 백영규였다. 그의 외모가 아마 박완서가 꿈꾸던 사람이었을 거라는 추측을 한다. 외모와 더불어 그의 소녀감성풍 노래들도 사람의 마음을 미어지게 하는, 좀은 염세적인 것들뿐이었다. 그 가을 <슬픈 계절에 만나요>는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불치의 병에 걸린 가여운 남자와의 사랑.
또 한 사람 있었다. 탤런트 태민영. 그도 그런 류의 외모를 지녔다. 창백하고 가냘픈.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그런 역으로 자주 나오기도 했다. 백영규와 태민영은 외모가 거의 흡사하게 닮았다. 실제로 태민영은 간암으로 4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어차피 이루지 못할 사랑이라면 이미 끝이 보이는 창백한 폐결핵의 그 남자와 불꽃같은 연애를 하고 싶다. 아! 박완서.
백영규 : 얼룩진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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