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청춘일 줄 알았는데 나 역시 인간임을 알겠다. 근래 1년여 사이에 몸이 많이 퇴화되고 있는 걸 실감한다. 생전 모르던 병원이 갑자기 가까워진 것도 그렇고 어린아이처럼 뛰고 나는 게 기본이었는데 점점 조신하게 몸을 사리게 되고 매사 자신이 없어진다.
몸이 찌뿌둥해 휴가를 내고 구례 산동엘 다녀왔다.
남쪽의 봄기운 쐬고 건강하게 돌아와요.
친구의 문자를 받고 피식 웃는다. 예전에는 그렇게 치유될 줄 알았는데 지금에사 그까짓 봄기운이 대수가 아니란 걸 안다.
아침 일찍 떠나 상위마을에 들어가니 세상은 고요한데 산수유는 앞 다투어 꽃을 피우느라 전 난리다. 지난 주 광양 매화마을의 인파를 경험한 터다. 평일이고 더구나 월요일이라 그런가. 인산인해일 것으로 예상했었으나 의외로 평온하고 나 이외의 관광객은 어쩌다 한두 사람 보인다. 꽃과 마을과 길이 더없이 아름다운데 거기 어울려야 할 사람이 없다. 사람 없는 풍경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무미건조하다 어디가 허전하다.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고 정오가 되자 사람들이 제법 몰려든다. 관광버스가 무더기로 쏟아내기도 한다. 비로소 꽃과 길이 완성된다.
상위마을에서 내려오려니 점점 더 인파가 많아진다. 면소재지까지 내려오니 과연 인산인해다. 산동 산수유축제기간이다. 아무리 축제라도 평일이고 더구나 월요일인데 그렇게 사람이 모여들다니. 이 사람들은 실업자들일까. 전부다 나처럼 휴가를 내고 온 사람들은 아닐 터. 아침에 한산했던 건 이른 시간이어서 그랬던 것이다.
여기도 지난 주의 매화마을처럼 꽃보다 사람 머리통이 더 많다.
이곳 산수유마을은 두 번째다. 여기도 20여년 정도 되었으니 생각해보면 나는 20년 전에 참 많이 돌아다녔다는 걸 깨단한다. 상위마을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거의 없다. 마을에 음식점이나 카페가 생긴 것 정도가 달라졌다.
산수유는 이 마을사람들의 주 수입원이다. 대학나무라고 할 정도다. 생계를 위한 나무가 관광객을 위한 나무가 되었다. 매화마을도 마찬가지다. 관광객이 몰려든다고 주민들이 득을 보는 것은 없어 보인다. 괜히 시끄럽고 오염만 될 뿐이지, 득 보는 건 엉뚱한 식당이나 장사치들이다.
어쨌든 마을은 이른 봄 짧은 한 철을 위해 한 해를 인고하며 기다리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봄날의 기운과 꽃향기를 마음껏 취했으나 몸이 힐링되지는 않은 채 돌아왔다. 산수유 노란 풍경이 오래도록 눈에 선하게 남으리라는 것은 자명하고. 미세먼지라는 생뚱한 걱정거리가 우리 삶에 왔지만 그래도 세상은 이처럼 여전히 아름답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열세 번째]
슈만 교향곡 1번 <봄> 3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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