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찢으며 달려 도착한 곳이 장승포.
바다와 포구는 아직 짙은 어둠에 묻혀 있다.
한밤에도 불을 밝힌 식당에 들어가 담백한 굴국밥 한 그릇. 시장기 덕으로 첫맛은 좋았으나 그릇이 비워져 가면서 맛이 없다. 매번 절감하는 것, 경상도 음식의 헛헛함.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항구도 깨어난다. 이미 봄이 무르익어 아침의 바람도 훈기가 가득하다. 미세먼지 좋음.
안녕 지심. 오랜만이야.
20여 년 전에 처음 만났었다. 그때는 유명하지 않을 때여서 어쩌다 들어가는 관광객을 어선이 실어다 주었는데 이젠 정기노선이 운행중이고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작은 이 섬은 인산인해가 된다.
아무래도 시기를 놓쳤나 보다. 당초에는 온 섬을 빨갛게 뒤덮은 동백을 기대했었다. 온난화 탓이겠다. 붉은 꽃송이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유난히 포근한 겨울을 만나 그때 저들끼리 피고지고 했을 것이다.
이나마 남아 있는 그녀들은 여태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애타게 기다리다가 이토록 빨갛게 멍이 들었을까.
흔하지 않아서 아름다운가.
누군가들이 군데군데 꽃송이를 모아놓았다. 강렬한 선홍색 정열.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다른 꽃들은 꽃잎들이 흩어져 날린다. 동백은 꽃송이 자체로 떨어진다, 뚝 뚝. 그래서 동백은 더욱 처연한 슬픔을 준다.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초록으로 덮인 이 길이 좋다. 섬 밖으로 멀리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연신 밀려들어왔다가는 빠져나간다. 여기서는 그저 사람도 밀물썰물 같은 존재다.
안녕 지심.
이제 다시는 오지 못할 것이다. 어디를 갔다 올 때면 느끼는 감정이다. 다른 데 갈곳이 여전히 많으니 또 이곳을 찾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아득히 먼 전설의 섬처럼 아련히 너를 기억할 것이다. 좀더 오래 눈에 담아두려고 선미에 나가 긴 인사를 나눈다.
사뭇 훈풍이 분다. 봄도 머지않아 끝나겠군.
장 르노 :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한국의 아름다운 길 열한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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