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수원 나혜석거리

설리숲 2019. 3. 29. 00:16


그는 수원 태생이다. 나혜석거리가 팔달구에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에 선정된 곳이라고 한다. 나혜석이라는 인물을 연관 지어 걸을 필요는 없다. 그냥 수원의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알고 걸으면 그만이다.

  나혜석의 시를 가지고 내가 어린 날 작곡했던 노래도 실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창가가 만연했던 일제시대의 그 분위기를 그대로 따라 역시 창가나, 얼핏 들어보면 찬송가에 가까운 노래가 되었다. 하긴 재주 없는 아이가 만들기엔 그것이 쉬웠을 것이다.





 

청소년기에 남다른 독서열의 누나들 덕분에 책을 접하는 기회가 많았다. 그때 접한 게 나혜석이었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다. 여전히 보통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인물이다.

 

페미니즘이니 뭐니 잘 알지도 못했고, 아예 이데올로기 따위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 책은 저자의 역량 때문이었는지 그닥 딱딱하지 않게 읽었던 것 같다.

 

책에 나오는 그의 시로 어설프게 작곡도 하나 했었는데 지금도 가끔 흥얼거리곤 한다.

 

책 내용은 재미있었지만 나혜석이란 인물에 대해선 물음표다. 흔히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스트라는 수식어를 붙이긴 하지만 내가 볼 때는 단순히 자신의 입신양명의 결과요, 이혼과 불륜을 서슴지 않은 여자였다. 그 과정에서 물론 고민도 했을 테고 여자로서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에 절망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여성 해방을 위해서 악전고투한 전력은 없다. 남성중심의 세계에서 화가로, 또 문학가로 이름을 얻었다는 결과만으로 그를 페미니스트라 할 수는 없다.

















31일이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100주년이요 3·1운동 100주년이다. 근처 화성에서도 대규모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일제 치하에서 화가로 소설가로 성공할 수 있는가. 그에게 친일 논란이 있는 이유다. 대표적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김활란은 악질 친일파다.

나혜석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그냥 일제시대에 성공한 여류화가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그의 친일행적은 더 연구할 일이고.

 

그러니 나혜석거리를 그를 기념하는 장소로 여기는 틀에 매일 필요는 없다. 그냥 아름다운 수원의 한 거리로 여기면 될 일이다.

 






인형의 가()

 

                         - 나혜석

 

1   

내가 인형을 가지고 놀 때 기뻐하듯

아버지의 딸인 인형으로 남편의 아내 인형으로

그들을 기쁘게 하는 위안물 되도다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순하게 엄밀히 막아 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 주게   

 

2

남편과 자식들에게 대한 의무같이

내게는 신성한 의무 있네 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사명의 길로 밟아서 사람이 되고자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순하게 엄밀히 막아 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 주게

    

3

나는 안다 억제할 수 없는 내 마음에서

온통을 다 헐어 맛보이는 진정 사람을 제하고는

내 몸이 값없는 것을 내 이제 깨닫도다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순하게 엄밀히 막아 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 주게

 

4

아아 사랑하는 소녀들아 나를 보아

정성으로 몸을 바쳐다오 맑은 암흑 횡행(橫行)할지나

다른 날 폭풍우 뒤에 사람은 너와 나

 

노라를 놓아라 최후로 순순하게 엄밀히 막아 논

장벽에서 견고히 닫혔던 문을 열고 노라를 놓아 주게


 

노르웨이의 입센의 희곡인 인형의 집에 깊이 천착했던 나혜석의 시. 이런 것들로 인해 그를 페미니스트로 인식하게 되었다.

 

내가 작곡했던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나는 인형이었네

아버지 딸인 인형으로

남편의 아내 인형으로

그네의 노리개였네

 

노라를 놓아라

순순히 놓아다고

높은 장벽을 헐고

깊은 규문을 열고

자유의 대기 중에

노라를 놓아라



 한국의 아름다운 길 열넷.




                               A.R.T : 러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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