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광양 다압 매화마을

설리숲 2019. 3. 17. 20:37

 

충주역에서 광양 매화마을을 간다는 E-트레인 테마열차 안내를 보고 신청을 하니 이미 2월에 다 매진됐다고 한다. 그래도 혹 몰라 대기로 접수했더니 이틀인가 후에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왔다.

 

어둠이 짙은 새벽에 기차가 출발했다. 그간 포근하더니 새벽 공기가 무척 차가웠다. 간밤에 전국에 눈비와 강풍이 몰아쳤다. 어둠이 걷히면서 차창 밖으로 설경이 지나간다. 산기슭과 개천, 산모롱이에 웅크려 앉은 시골집들이 흰눈과 함께 지나간다. 한겨울 내내 보지 못했던 설경을 봄에 다다라 보게 된다. 때늦은 겨울풍경에 와락 여수(旅愁)가 밀려든다. 시베리아횡단열차 안에서 바라보는 낯선 러시아 풍경을 보고 있다는 자아도취에 빠졌다. 햇살이 퍼지자 어느새 눈은 사라지고 다시 봄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사람이 밀물처럼 왔다가 도가니처럼 끓고는 썰물 되어 빠져나가는 마을이 광양 다압면 일대에 산재한 매실과수원이다.

하얗게 매화가 뒤덮은 마을은 장관이다. 세상 가장 아름다운 길이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길이기에 이처럼 인파가 몰려드니 실제로는 아름다운 길이 되어 본 적은 없다. 사람이 빠져 나가 고즈넉하다면 이미 매화가 졌다는 것이다. 그제는 어디서나 보는 평범한 시골 농로일 뿐이다.

 

 

 

 

 

 

 

 

 

 

 

꽃보다 사람 머리통이 더 많다고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놀러다니는 사람은 늘 많다는 답장이 오고, 어려우니 더욱 더 심신을 위로할만한 곳을 찾아다니는 게 인간심성인 모양이라고 다시 답을 보냈다. 중산층 화이트칼라들은 담배를 거의 안 핀다. 담배 피는 사람들은 대개 가난한 노동자 따위의 저층 사람들이다. 삶이 힘드니 알량한 담배연기에 잠깐의 쾌락을 맡기는 것이다. 그들 중에는 담배 한 갑 살 돈도 버거운 사람들도 있다.

 

 

 

 

 

 

 

 

 

 

 

 

 

 

 

 

 

 

 

 

 

 

 

 

 

 

 

 

 

 

 

 

 

이 많은 인파도 곧 사라져 버릴 것이다. 짧게 절정을 보내고 가뭇없이 사라지는 봄처럼.

단 하루라도 이처럼 화려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큰 호강인가. 제대로 걸을 수 없을 만큼 인파에 대껴도 저렇게 환한 모두의 표정은 우리가 살아 있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병우 : 꽃날

 

한국의 아름다운 길 열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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