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냉정과 동정 사이

설리숲 2019. 3. 12. 22:23

 

병원하고는 친하지 않다고 호언도 하고, 백년천년 건강할 줄 알았지만 근래 병원에 갈 일이 생기고 말았다. 뭐 인간이면 누구나 자연스레 지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니 걱정할 것까지야 없다.

 

의원에 들어서니 젊은 여성 하나가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는데 한쪽 다리를 걷어 올렸다. 무릎이 까지고 피가 엉긴 게 넘어졌나 보다. 그런 찰과상은 나도 여러 번 겪었기에 그 상처만 봐도 아픔을 뼈저리게 짐작하고도 남는다.

잠시 후 그녀가 의사를 따라 들어간 치료실에서 신음소리가 나온다. 약을 바르기 위해 소독제를 먼저 문질렀을 테고 그 일련의 치료과정의 아픔들이 안 봐도 비디오다.

잠시 후 나온 젊은 여성의 표정이 사뭇 아픈 기색이다. 약간 저는 걸음걸이다. 통 넓은 바지에 구멍이 뚫린 걸 보니 심하게 넘어졌나 보다.

그녀를 부축하며 나란히 걸어 나오던 간호사가 불쑥 이런다.

“4천원이예요.”

 

에구 저런!

의사가 선망의 대상이고 우러러보는 직업인 건 돈을 잘 버는 까닭이요, 그 돈이야 당연 이렇게 환자 하나하나를 봐주고 버는 것이니, 환자를 상대로 돈을 요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의사가 돈을 벌음으로써 월급을 받는 간호원도 환자에게 치료비를 청구하는 것 또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인데도 순간 비정한 병의원의 속성에 기분이 언짢았다.

한쪽 다리를 절며 아파 인상을 찡그린 사람에게 너무도 예사롭게 ‘4천원을 말할 수 있는 그 비정함과 그럴 수밖에 없는 직업정신이 공연히 서운하고 서글펐다.

인술(仁術), 백의의 천사라는 낱말이 허공을 떠도는 생경한 경험이었다.

 

하긴 그렇지 않으면 의사가 선망 받는 직업이 되지는 못했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