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흙사랑, 두부를 쑤다

설리숲 2019. 2. 15. 00:00


세밑이면 어머니는 두부를 쑤었다. 내 시골에서는 뒤비라고 했다. 불린 콩을 맷돌에 탔다. 삼베로 이것을 삼베로 걸러 찌꺼기를 거르면 맑은 콩물이 되었다. 이 찌꺼기가 비지다. 발효시켜 먹으면 맛난 비지장이다. 콩물은 바로 우리가 아는 그 두유다. 그대로 마시면 고소한 것이 끝내주는 맛이지만 가열하지 않은 생즙이라 배탈이 날 수 있다.

이 콩물을 가마솥에 부어 끓이는 것이다. 추운 겨울날 사랑방 기직이 시커멓게 탈 정도로 하루 종일 아궁이에 장작을 지펴 뒤비를 쑤었다.

콩물이 끓어 응고가 된다. 이것을 삼베를 깔아 둔 뒤비틀에다 부어 삼베를 덮고 무게 나가는 널판자를 얹어 지둘러 놓으면 모난 뒤비가 되었다. 모를 만들기 전의 응고된 상태가 순두부인 것이다.

 

엿을 고는 것과 함께 뒤비 쑤는 풍경은 내 어린 날의 겨울을 풍성하고 설레게 하는 소묘였다. 부엌 가득히 퍼진 연기 속의 아버지 어머니 모습은 평생 눈에 암암하다.

 

흙사랑에서 두부를 쑤었다. 여름 가자를 수확하고 나서 뒤이어 콩을 넣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장밋빛 청사진을 그렸었다. 이걸 수확해서 23일 놀러 가자는 이야기도 그 와중에 나왔다.

흙사랑 직원들의 이른바 농장경영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아예 그것과 담을 쌓아서 관심도 없었다가 11월 말쯤에 궁금해 한번 가보긴 했다. 작황이 영 부실했다. 꼬투리도 별로 없고 그나마 달린 꼬투리에도 알이 들어 있는 게 별로 없었다. 흉작.

그래도 그냥 버리긴 아까우니 베다가 말려 어찌어찌 타작을 하고 나니 서 말 가웃이나 될까. 그걸 또 선별하고 나니 삼분지 이로 줄었다. 콩 상태도 민망하고 양도 민망하니 어디다 내다 팔겠다고 못하고 그걸로 두부를 쑤기로 했다.

 

그래서 만든 두부인데 이것도 영 신통치가 않다. 푸석푸석하니 비주얼은 벽돌 같고 식감은 스펀지 씹는 것 같다. 한모 떠내서 간장 찍어 먹으니 그런대로 고소한 맛은 있는데 한 모에서 그치고 말지 두 모는 당기지 않는다. 색깔도 어린 시절의 그 하얗게 빛나던 뒤비가 아니라 누리끼리한 빨래비누 같은 것이 구미조차도 시덥지않다. 나야 뭐 레시피는 얼추 알아도 전문가가 아니니 무얼 잘못했는지 알지 못한다. 어차피 나는 손 하나 거들지 않았으니 이러구러 타박할 처지도 아니어서 한 모 먹으면서 거참 맛있다고 입에 발린 소리나 할밖에.

 

콩도 메롱이고 두부도 메롱. 창대한 시작이 그 끝은 미약했지만 하얗기 김이 오르는 풍경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그 겨울 풍경이 다시금 떠올라 마음만은 풍성한 한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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