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군산 철길마을

설리숲 2019. 2. 12. 00:51

 

 

사라져 갔기에, 가질 수 없기에 더욱 아름답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라서 애틋하고 그리운 것이다. 그와 또는 그녀와 결혼하여 산다면 그처럼 애틋하고 아름다울까.

 

이제는 증기로 움직이지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기차(汽車)라고 한다. 가슴에 박힌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아침,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날은 맵싸해도 청량한 겨울아침의 공기가 상쾌햐다.

 

전에 몸담았던 문학카페에 군산에 사는 사람이 있어 가끔 그곳의 사진을 올리곤 하였다. 어느 날은 경암동 기찻길 풍경을 올렸는데 아주 이국적이고 생경한 풍광이었다. 그때만 해도 경암동 기차가 운행되고 있어서 좁다란 골목길을 천천히 운행했다. 아이라도 뛰어나올까 아슬아슬한 아주 이색적인 기찻길이었다.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오래도록 마음만 있었다.

 

 

 

 

 

 

 

 

 

군산 경암동 철길은 194444일에 첫 운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신문용지 제조업체인 페이퍼코리아()의 원료와 제품을 실어 나르기 위한 특별 철도였다. 하루 두 번 운행하는 기차는 길지도 않은 이 길을 오랜 시간을 걸려 지나갔다. 건널목이 열한 개나 되었고 주택가 처마를 스치듯이 지나가야 했기에 빨리 달릴 수 가 없었다.

기차가 지나갈 때는 예전 벽제를 하듯 앞에 탄 역무원 세 사람이 호루라기도 불고 고함을 쳐 주민들에게 위험경고를 했다.

비설거지하듯 주민들은 기차가 오는 경고음을 들으면 널어놓았던 것들을 걷어 들였으며 아이들과 강아지들도 단속하였다.

그것이 불과 10년 전이었다. 기차는 200871일 폐선되었다.

기차는 사라지고 여전히 그 때의 흔적들은 고스란히 남아 관광객들의 추억팔이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내가 너무 부지런을 떨어 길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호젓해서 좋긴 했지만 사진을 찍으려니 삭막하다. 사진엔 사람이 들어가 있어야 진짜 사진이다. 손이 시리게 날도 춥고, 맨숭맨숭 심심하기도 하여 요기도 할 겸 편의점에 들어가 따끈한 라면에 몸을 녹였다.

 

햇살이 퍼지면서 인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시각 때가 가장 좋다. 낮이 되면 좁은 철길에 인파가 넘실거려 실상 사진 찍기가 어렵다.

햇살 한 점 들어올 것 같지 않더니 역시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 거침없이 햇빛이 들어와 꽂힌다.

비로소 하루가 열리며 닫혀 있던 철로변의 가게들이 하나씩 문을 연다.

 

 

 

 

 

 

 

 

 

 

 

 

 

 

 

 

 

 

 

 

 

 

 

 

 

 

 

사라진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사라지지 않은 것들도 역시 그렇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그 의미가 있기에 존재하고, 그러므로 어는 것 하나 하찮은 것은 없다. 모두가 귀중하고 빛나는 보석들이다.

 

생명 없는 것들도 그럴진대 내가 속해 있는 세계의 사람 어느 누가 소중하지 않으리. 미워하지 말자. 그 사람도 어느 어머니의 어여쁜 아들이고, 어느 여인의 듬직한 남편이고, 아이의 하늘같은 아빠일지니.

 

이 철길은 사계절이 모두 같은 풍경일 것이다. 눈이 내린 날은 좀 다르려니.

 

 

 

 

 

 

 

 서리 내린 아침은 상쾌하기도 하지만 눈내린 아침과는 다른, 묘한 서글픔 같은 것이 있다.

 냉랭한 겨울 아침, 물새들이 사람보다 먼저 깨어 붉은 아침놀을 받고 있다. 

 

 

 

 하루가 희부옇게 열리고 있었다.

 

 

 

 

 

 

 


 네가 탄 아침기차 어느새 멀어져 희뿌연 연기 속에 사라졌을 때  나는 돌아서서 혼자서 걸으며  언제나 같이 듣던 그 노래 들었을 때
 햇빛은 어찌나 눈이 부신지  나는 하마터면 눈물 흘릴 뻔했네

 

 

 

             조동진 : 아침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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