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강릉 모정탑길

설리숲 2019. 2. 4. 23:19


눈은커녕 비도 없는 마른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

역시 강원도라 응달진 산비탈이나 각담 구석에는 잔설이 남아 있어 그나마 겨울의 풍경을 본다.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황량한 산과 내가 촉촉이 젖는다.

 

노추산 계곡에 들었다. 모정이 깃든 길이다. 수많은 돌탑이 빼곡하게 늘어선 계곡이다. 가족을 위한 어머니의 사랑이 집적된 탑들이다. 필생의 각고가 생생하게 남은 이른바 모정의길.


 정선에 살 적에 바로 지척이었는데 가깝다는 생각에 한번도 가 보질 않았었다. 이제 먼 곳에서 찾아가자니 새록새록 옛 그리움이 피어난다. 정선읍을 지나면 내 인생의 중요한 한 때를 보냈던 아우라지다. 겨울 풍경은 여전하다.

 아우라지를 옆구리에 끼고 대기리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그때도 무척 가보고 싶었던 모정의 탑이다.









전설은,


차순옥 여사는 강릉으로 시집와 슬하에 4남매를 두었다.

언제부턴가 집안에 우환이 이어졌다.

어느 날 노인이 나타나 노추산 계곡에 탑 3천개를 쌓으면 우환이 사라질 것이라는 선몽을 꾸었다.

노추산을 골골샅샅 다니며 땁 쌓을 곳을 찾다가 율곡 이이의 정기가 서린 이 계곡에 26년간 탑을 쌓았다. 차차 집안에 평온이 들었다.

여사는 20119월에 향년 66세로 작고하였다.

 

전설이라지만 허무맹랑한 판타지가 아닌 실화요, 그것도 오랜 이야기가 아닌 내 생애와 같이 진행되어 온 이야기니 통념상의 전설과는 다르다.






























 



비가 흩뿌리고 계곡은 내내 안개가 자욱했다. 어둑한 분위기와 안개, 그리고 탑이 만들어낸 풍경은 판타지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아무도 없이 혼자 걷는 길, 어쩌면 담 약한 사람은 무서움을 느끼게 괴기스런 풍경이기도 했다.

이렇게 혼자 걷는 오솔길이 좋다. 흠뻑 젖은 겨울나무의 새초롬함과 빗소리, 이따금 지저귀는 새소리, 바짝 얼어붙은 냇물.

풍진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그윽한 낙원에 온 듯 기운이 착 가라앉았다. 산은 안개로 가득했다. 선계(仙界)인가?

이 길이 영원으로 이어졌다면 끝까지 걸어가 역시 영원히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는 환상에 젖었지만

그러나 영원의 길은 없으며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깊은 겨울인 것 같아도 어김없이 계절은 돌아와 강원도 깊은 계곡에도 이미 버들개지가 피었다.

겨울이 짧다.









 러시아 노래는 대개 비창하고 음울하다.

 스베틀라나의 이 노래는 이른 아침 홀로 길을 떠나는 여행자에게 더욱 비감하게 젖어 든다.



   나 홀로 길을 나섰다
   돌투성이 길은 안개 속에서 빛나고 있다
   밤은 고요해 신의 소리마저 들릴 듯 하고
   별들은 서로 속삭인다
   창공은 장엄하고 경이로우며
   대지는 창백한 푸름 속에 잠들어 있다

 

   왜 나는 이토록 고통스럽고 괴로운가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을 기다리는가

   아! 나는 이미 내  삶 속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지나가 버린 날들이 아쉽지 않다
   나는 자유와 평온을 갈구하며
   다 잊고 잠들고 싶을 뿐







스베틀라나 : 나 홀로 길을 가네



한국의 아름다운 길 다섯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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