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김제 새만금 바람길

설리숲 2019. 1. 13. 13:20


 텅 빈 겨울 들판 위로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허기가 지고 피로가 몰려왔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기차를 타기로 했다. 목적지는 없다. 그냥 대충 적당한 데 내려야지. 기차가 실어다 주는 대로 무작정 가고 싶었다. 저 기차가 닿는 곳에 또다른 세상이 있을 것 같았다.

 기차가 지나간 철둑길에 뽀얀 먼지가 날린다. 먼지처럼 흩어질 인생이여.

























김제 진봉면사무소에서 심포항으로 가는 길은 만경강변이다. 드넓은 갈대밭이다.

수평선과 지평선을 다 볼 수 있는 곳인데 미세먼지로 수평선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저만치 어디 있으리라 어림만 한다. 블로그 포스팅할 때마다 쓰게 되는 이놈의 미세먼지’. 겨울에 우리는 숙명처럼 생활 속에 이들을 두고 살아야 한다.

 

저 갈대숲에 통나무집 짓고 하루 종일 누워 있고 싶다. 바람에 서걱이는 갈대들 소리로 하루를 보내 보았으면.


















































 

 좋은 인연이란 언제든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다 했던가. 그 낯선 역 대합실에서 나는 그렇게 진현 스님을 만났다. 내가 오래도록 그를 그리워했을까. 그렇진 않았다. 이따금 잠자리에 누워 온갖 가공망상을 하던 끝에 생각나는 이. 첨엔 그립기도 하더라만 시간은 차츰 내 안에서 그를 잊게 했다.

 그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고운 눈매.

 둘 다 아무 말이 없었다. 할 말이 없었다. 말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서로 바라만 보아도 충분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스님과 함께 기차에 올랐다. 그는 지난 여름 안거를 해제하고 나선 길로 아직도 만행 중이라 했다.

 망해사로 간다고 했다.

 낯설다.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었지만 사뭇 낯설기만 하다. 오랜만이 어서가 아니라 아마 승복 때문일 것이다. 처음 그 손을 잡기 위해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가. 하지만 지금의 그 손 가슴이 뛰는 주저함은 아니다 기필코. 아마 두 번 다시 그 손을 잡지는 못하리라. 어쩌면 그 얼굴 보는 것조차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

 전에 내가 그를 사랑했었나.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리 오래 전도 아니거늘 이토록 낯선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느낀다. 연인이 남이 돼 가는 과정엔 시간만이 있는 건 아니다. 그와 내가 처한 현실과 상황들, 그리워하지 않으려는 스스로의 '버리기'.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지 않는 무의식 속의 자기전진들.

 

 낯선 곳에서의 짧은 만남.

 어느 간이역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아무런 약속도 없이 또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아니 만나기를 희망하며 나는 스님과 기차를 떠나보냈다.

 그는 고운 석양빛 속으로 사라져 갔다.

 한때의 사랑은 참으로 부질없고 허무한 것이다. 내가 그를 사랑했을까.

 이제는 언제 만나게 될까. 그도 역시 나처럼 방랑자다.

 바람 같은 인연. 알 수 없는 느꺼움이 목울대로 차올라, 나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서서 멀어져 가는 그의 기차를 바라보았다.









                슬기둥 : 여행

  



 한국의 아름다운 길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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