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날들이 우리 옆을 다녀가지만 똑같은 날이었던 적은 없었다. 반복되는 날이라고 지루해하거나 자괴하지 말자. 오늘 카푸치노를 마셨다면 내일은 아메리카노를 마시자. 결코 똑같은 날이 되지 않게.
매일 같은 길을 산책해도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다 똑같지 않을 것이다. 햇살의 양이 다르고 미세먼지도 다르다. 가로수의 나뭇잎도 어제와 분명히 다를 것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는 대구의 동대구로를 걸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없는 것이고 사람마다 심미안이 다르니 순위에 랭크되었다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수성못부터 동대구역까지의 대로다. 이 길이 아름답고 특이하다는 건 중앙분리대 대신 숲이 조성되어 있어서다. 대도시의 삭막한 미관을 이 숲이 완벽하게 바꿔 놓았다.
오늘도 역시 미세먼지. 날은 춥지 않음.
대구 도시철도 3호선은 특이하고 재미있다. 철 레일이 아닌 공중으로 내달리는 모노레일이다. 전동차도 세 칸인 미니 열차이고 한 량의 크기도 아주 작다. 좌석은 마주보고 앉은 긴 의자에 열두 석밖에 안 된다.
칠곡에서부터 용지까지 대구의 서북쪽과 동남쪽을 관통하는 철도로 공중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대구 시내를 발 아래로 조망하며 이동할 수 있다. 더 재밌는 건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의 생활권이 침해될 소지가 있어 그런 구간을 지날 때면 창문이 자동적으로 흐려져서 창밖이 보이지 않는 특수장치가 되어 있다.
전에 한번 동대구역 우동집에서 식사를 한 적 잇었다. 서빙을 보는 아가씨의 미모가 뛰어나 자꾸만 눈이 갔는데 사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한 가지 아쉬움이 있어서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는데 그게 영 걸렸다. 꼰대기질이 발동해서 못마땅한 게 아니라 노랑머리가 아니라 본래의 검은머리였으면 지금보다도 훨씬 아름답고 예쁠 텐데 하는 아쉬움이었다. 식사를 하는 내내 자꾸만 쳐다보다가 수첩을 꺼내 간단하게 글을 적었다. 검은머리를 하는 게 훨씬 예쁠 것 같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냥 말로 하기에는 그도 나도 민망하였다. 웬 오지랖 넓은 아저씨가 치근덕대는 것 같은 볼썽사나운 광경일 것이었다. 하긴 남이야 노랗게 염색을 하든 말든 참견하려는 그 행위 자체가 민망한 오지랖이긴 하다. 나중에 나도 자신이 좀 창피하긴 했으니까. 결제를 하면서 그녀에게 메모를 주고는 얼른 나와 버렸다. 그게 끝이었다.
오늘 오랜만에 동대구역엘 가서 다시 우동집엘 들어갔다. 전의 일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그랬는데 전의 그 아가씨가 아직도 그 가게에 있는 것이다. 아마 아르바이트가 아닌 그 집의 딸일 거라는 짐작을 했다. 그런데 노랑머리가 아닌 검은머리였다 헐! 그녀가 내 조언을 받아들였다는 말이다 헐! 그런데.
그런데 내 짐작이 빗나갔다. 기억은 희미하지만 전의 노랑머리였을 때가 더 나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런 미안해라!
솔직히 그녀가 내 메모 때문에 바꾸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자기 취향에 따라 바꾸었을 게 맞다. 그래도 내 자신의 착각으로 공연히 미안했다. 다시 노랑머리로 바꾸라고 할 수는 없고, 나는 그녀를 알지만 그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 * * * * * *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니 멀리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가냘프게.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먼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길 위의 날들을 기억한다. 그것들을 사랑한다.
이제 새로이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라는 주제로 블로그 테마를 하나 더 얹는다. 길 위에 스러지는 날이 올 것을 안다.
쉬바리 : Good Night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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