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쯤 되면 건물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광화문 일대에서 매일 보는 풍경이다. 이곳은 대기업 본사들이 밀집되어 있어 이 시각이면 점심 먹으러 그렇게들 쏟아져 나온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너나없이 커피집으로 향한다.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거나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소공원 벤치나 그냥 서서, 아니면 걸어가면서 마신다.
그들의 얼굴은 몹시도 행복해 보인다. 그렇잖은가. 직장인에게 하루 중에서 이 점심시간 1시간이 가장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온전한 내 시간이니까.
거개가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다. 좋은 직장에 다닌다는 과시욕도 있을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광화문 일대 직장인들의 평균 월급이 서울의 전체 직장인 평균 월급의 두 배 정도 된다고 한다.
점심시간의 망중한을 즐기는 그들을 보며 사람에 따라 선망하는 시선들도 있겠지만 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한담을 나누며 행복해 보이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건물 속으로 들어가 목을 매는 처지가 된다. 남들이 선망하는 고급 직장이지만 을이라는 신분인 이상 갑에게 고분하게 복종해야 하는 생활의 반복이다. 이것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내가 주인이 되는 일을 하지 않는 한 평생 지고 살아야 하는 굴레인 것이다. 목에 건 사원증은 곧 개의 목줄과 같다.
그러니 구속의 일상에서 온전히 내 것인 점심시간의 여유는 참으로 달고 행복하고 소중한 것이다. 잠깐이지만 그들의 얼굴이 그렇게도 행복해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 그들이 점심시간마저 빼앗긴다면 어떨까.
목하 내가 몸담은 직장에 이 점심시간의 비근로권리에 대해 논란이 진행 중이다. 고급 직장인들에게도 중요한 저 한 시간을, 최저시급에 고용된 노동자들더러 양보하라면? 글쎄다. 내 마인드가 인색하고 빡빡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