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익산 나바위성지

설리숲 2018. 12. 15. 00:25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 안드레아, 그가 18451012일 신자들과 중국에서 귀국하여 금강을 거슬러올라 처음 발을 디딘 곳이 바로 지금의 나바위 언덕이라 한다. 그것을 기념하여 지금의 자리에  베르모렐 신부가 착공하여 1907년에 준공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익산 화산리다, 원래 이름은 화산성당이었다가 1989년에 나바위성당이라 개칭했다. ‘나바위는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야산 정상에 너럭바위가 하나 있어 그것이 지명이 됐을 거라는 설이 유력하다. 지금은 익산이지만 이 지역은 본래는 강경 땅이었다. 그래서 논산엔 김대건을 주보성인으로 모신 미션스쿨 대건고등학교가 있다.

 

 오래된 성당건축물이 대개 그렇듯이 한국의 전통양식과 서양의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건축물이다. 명동성당을 설계했던 프아넬 신부의 작품이라고 한다.













 

  나바위 성당을 돌아 화산으로 올라가면 초입에 넓은 성모동산이 있고 평화의성모상이 있는데 이 자리가 전라북도 3대 명당이라 한다.

  초대 주임인 베르모렐 신부가 본당을 건립하고 성당을 지으려고 준비를 하는데 난관이 하나있었으니 그 자리에 암자가 하나 있고 스님이 한 사람 살고 있었다. 암자가 있는데 성당을 지을 수는 없는지라 암자의 스님을 만나 이곳에 성당을 지으려고 하니 당신이 좀 나가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 혹은 겁박을 하였다. 당연 스님은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신부를 박대하였다.

  신부는 날마다 스님이 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서너 달 후 뜻밖에 스님이 찾아와서 자신이 이곳을 떠나겠으니 신부더러 화산과 암자를 뜻대로 하라고 이르고는 홀연히 나바위를 떠났다.

 

  신부는 어찌된 영문인지 앞뒤 정황을 살펴 알아본 끝에 내막을 알게 되었다. 신부가 다녀간 그 날부터 스님의 꿈에 한 여인이 나타나 이 자리는 내 자리니 어서 속히 나가라고 매일 괴롭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바위성당이 지어졌고 1960년대에 본당 성심회에서 그 자리에 성모상을 세웠다고 한다.











 가을은 저 멀리 가고 본격적인 겨울이었다.






포레 <레퀘엠>중 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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