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엄마 나 죽으면 앞산에다 묻지 마
뒷산에도 묻지 말고 양지쪽에 묻어 줘
비가 오면 덮어 주고 눈이 오면 쓸어 줘
내 동무가 찾아오면 엄마엄마 울지 마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은 이 노래로 시작된다. 이 노랫말이 연극의 내용을 압축한 것으로 보면 된다.
뮤지컬이면 모를까 영화처럼 연극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여사친과 기차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예전 자신의 엄마와 다녔던 여행 이야기를 다시 풀어냈다. 그의 엄마는 몇 년째 병석에 누워 계신다. 한때 엄마와 다녔던 추억을 이야기하며 회한에 젖곤 하는 것이다. 그는 참 효녀다. 어이딸 사이가 참으로 구순하다 하더라도 같이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제는 시난고난 움직이기 힘든 처지가 된 엄마와의 지난 추억이 새삼스러이 소중하기도 하겠다.
그때 문득 충주 거리에서 본 연극 포스터를 생각해 냈다. 문득 그 연극이 보고 싶었다. 나도 엄마 생각이 간절해졌다. 바로 예매를 했다.
관객들은 대부분 여자들이다. 여자 스물에 남자 한 명 꼴이다. 객석에 앉으니 여자들 속에 파묻힌 모양새다. 명불허전 강부자다. 과연 한국의 최고 연기자라는 찬사를 들을 만하다. 사실은 나는 전미선 때문에 이 연극을 볼 생각을 하였다. 사람은 나름으로 이상형이 있기 마련이라 내겐 전미선이 어느 정도 그것에 근접했다. 빼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이웃집 누나 같은 평범한 친근함이다. 꾸미고 화장을 해도 별로 예쁘지 않고 오히려 수더분하고 평범할 때 더 매력이 있는 타입이다. 그래 그 장점이 <친정엄마와 2박3일>에 꼭 부합되는 캐릭터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내 기대에는 조금 못 미쳤다. 강부자의 빼어난 연기력에 비해 전미선은 그저 평이하게 소화하는 정도다. 전미선이 아니라 다른 여배우가 했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았겠다 싶다.
어쨌든 연극은 좋았다. 스포일러를 보호해야 하니 내용은 쓰지 않지만 우리 사회 가족의 모럴을 진지하게 건드리고 있다. 특히 가장 애틋한 관계인 어이딸의 운명과 인연에 대해 절절하게 이야기한다. 주위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슬픔은 전이되는지라 덩달아 숙연해지며 무대에 빨려 들어간다. 그러다 어느 한 장면 – ‘우리 미영이 불쌍해서 어떡해’라는 오빠 대사의 순간이다 – 에서 급기야 울음들이 터진다. 나도 감성이 있다. 눈물이 흐른다.
“내가 엄마 때문에 못 살어”
“이년아 넌 엄마 때문에 못 산다 그러는데 난 너 때문에 살어”
세상 모든 엄마와 딸의 관계가 이 대사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충주문회회관과 담벼락을 사이에 둔 옛 관아 터다. 이미 겨울은 깊었는데 정원 뜨락에 수북한 낙엽들이 바람에 굴러다닌다. 운치만으론 늦가을이다. 연극 관람 후의 여운이 남아 이 쓸려 다니는 낙엽들이 애달프게 가슴으로 들어온다. 낙엽은 가을 지나 겨울이어도 이리도 처절하다.
*
그리고 전미선은 올 여름 6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영면하세요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