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최진사댁 셋째 딸

설리숲 2018. 12. 11. 00:19


한국적인 정서가 풍부하게 담긴 노래 중 하나.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그 정서를 공감할 것이다. 곶감과 호랑이 이야기처럼.

 

셋째 딸은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갈 만큼 그 집 자매들 중 가장 예쁘다는 우리의 전통 속설이 있거니와, 노래 <최진사댁 셋째 딸>은 그 정서를 풍부히 담았다. 그런데 사실은 보편적으로 셋째 딸이 가장 인물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 말은 곧 그 셋째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속설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요즘의 개념으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폭력과 억압이 점철된 전근대적인 내용이 다분하다.

딸의 배우자를 본인의 의사가 아닌 아버지 최진사가 독단적으로 정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사랑한다고 프러포즈하러 온 청년을 엉금엉금 기게 두들겨 팬다. 강력범죄자다. 요즘 국민악마라고 칭하는 양진호의 엽기 갑질에 버금간다.

아니,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아가씨를 사랑한다니 그것부터가 가당찮다.

먹쇠도 밤쇠도 그 누구도 얼굴 한번 못 보게 아버지는 딸을 규방 속에 깊이 감금해 놓았다.

 

이 노래는 만요(漫謠). 굳이 진중하게 사료할 것까지야 없다. 가볍게 웃고 즐기면 그만이다. 그러기에 전근대적인 풍토임에도 과감하게 그 이데올로기를 타파하는 신사고(新思考)가 있지 않은가. 최진사댁이라고 하면 엄연한 사대부 양반 가문이거늘 감히 무지렁이 촌놈들이 사위가 되겠다고 달려들지 않는가. 게다가 결말은 칠복이라는 놈이 신분을 극복하고 최진사댁 셋째 딸을 차지한다니.

 

그래도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좀 불편하게 느낄 사람도 많을 것이다. 특히 페미니즘이 중심 이데올로기로 향해 가는 지금 세태에, 본인의 의사는 무시된 채 아버지 최진사의 즉흥적인 기분에 의해 상것인 칠복이 앞에 나와 절을 하는 양반집 딸의 굴종은 많이 불편하다.

 

이 노래가 나온 것이 70년대 초반이니 그 때만 해도 이런 가사 내용이 자못 재미있었을 테고 문제 삼을 만한 것은 없었으리라. 하긴 지금도 그저 만요라고 치부하면 그닥 불편하지도 않을 테다.

 

이 노래는 물론 번안가요다. 원곡은 아주 오래된 노래다. 알 윌슨(Al Wilson)의 뱀(The Snake)인데 원곡의 가사도 기괴하다.

한 여자가 출근길에 호숫가에서 추위에 덜덜 떠는 뱀을 보고는 가여워서 따뜻한 집에 데려다 놓았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내내 뱀을 염려하던 여자가 퇴근해 집에 와보니 뱀은 기력을 찾아 생기발랄하게 회복하였다. 여자는 그 귀여운 뱀에게 무한한 사랑을 느낀다. 뱀은 부디 이 집에서 같이 살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여자는 그러자고 약속하고 뱀에게 애정을 담은 키스를 퍼붓는다. 그러나 바로 그때 뱀은 여자를 문다. 여자가 당황하여 내가 추위에 죽어가는 너를 구해 주었고 이제 너를 아껴서 보살펴주며 같이 살자고 했는데 너는 나를 물었다라고 반문한다. ‘이 어리석은 아줌마야, 나는 이 집에 오기 전에도 뱀이었다. 당신도 그걸 알고 있었잖아!’

이 노랫말의 본질은 뱀은 뱀일 뿐 사악한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일 게다. 뱀을 악과 죄의 근본으로 설정한 성경 속의 내용을 끌어내 우화처럼 재미있게 지었다. 역시 뱀은 뱀인가.

 

<최진사댁 셋째 딸>은 조영남의 노래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은하가 먼저 불렀다. 나도 이은하의 노래로 듣고 자랐다. 조영남은 한참 뒤다.






전우중 번안 외국가요 이은하 노래 : 최진사댁 셋째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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