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이 곡을 모른다면 슈베르트를 모르는 것이다.
1838년 26살의 작곡가 슈만은 슈베르트의 묘지에 들러 참배하고 고인이 살던 집을 찾았다. 그 집은 프란츠의 형인 페르디난트가 고인의 유품을 모아 관리하고 있었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악보들을 뒤적거리다가 슈만은 웅장한 한 교향곡 악보를 발견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곡이었다. 경탄을 금하지 못하고 슈만은 그 곡을 공연하기로 결심했다.
이듬해 라이프치히에서 멘델스존의 지휘로 역사적인 초연을 했다. 이것이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이다. 부제가 Great(대교향곡)다. 그리고 슈만은 자신이 발간하고 있던 음악신문에 위의 기사를 실었다.
“단언컨대 이 곡을 모른다면 슈베르트를 모르는 것이다. 음악은 수백 가지의 방식으로 상상 저편의 방식을 보여주는데 아름다움과 즐거움, 슬픔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드러낸다. 이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 곡을 꼭 들어보길 권한다. 거장다운 기법만 아니라 세세하게 깃든 생명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곡을 전혀 몰랐다. 좋아하는 음악가를 물어보면 늘 슈베르트라고 대답하곤 한다.
슈베르트 8번 교향곡이 일명 ‘미완성’이다. 2악장까지만 완성하고 사망해서 미완성이다. 그러니 8번이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고 9번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 나는 슈베르트를 좋아한다고 할 수가 없다. 그의 1번부터 9번까지의 교향곡을 전부 들어봤으며, 그 유명한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를 전부 들어봤는가? 아니다.
단지 그의 고독과 우울한 생애만을 동정했고 자신의 감성에 결부시킨 대리만족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얼마나 경박한 속물인가.
실은 슈베르트의 교향곡은 여덟 곡이다. 9번 교향곡은 원래는 7번이었다가 작곡 순서에 의해 나중에 9번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므로 슈베르트의 7번 교향곡은 결번이다.
9번의 저주.
베토벤, 드보르작, 브루크너, 말러, 글라주노프, 슈포어, 본윌리암스.
모두 9번 교향곡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 9번 교향곡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죽음의 교향곡이라고들 한다.
말러는 이 저주를 피하고자 8번 교향곡 <천인>을 만들고 나서 다음에 만든 교향곡을 9번이라 하지 않고 <대지의 노래>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곡은 이례적으로 교향곡의 형식을 벗어나 성악을 넣은 파격적인 곡이다. 그럼으로써 애써 교향곡이 아님을 천명하려 했다. 그 때문이었는지 말러에게 저주는 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다음에 만든 교향곡에 비로소 9번을 붙였다. 그랬는데 이 교향곡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그가 그토록 두려워하여 피하려 했던 ‘9번의 저주’는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슈베르트 역시 9번 교향곡을 마지막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슈베르트의 경우는 다르지만 어쨌든 이 교향곡 9번 <Great>를 끝으로 작고했으니 이것도 공포의 징크스에 해당하지 않을까.
운명의 수레바퀴에 휩쓸려 사라져간 비운의 음악가라고 하면 지나친 감상주의일까 모르겠다.
중요한 건,
슈만의 말처럼 단언컨대 나는 슈베르트를 모른다는 것이다.
슈베르트 교향곡 9번 <그레이트> 1악장 D.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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