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옥수수 하모니카

설리숲 2018. 8. 8. 00:11





  하늘이 세 평 되는 강원도 산골의 척박함은 빈약한 농토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평평한 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자드락 벗밭인데다가 그마저도 손바닥만 한 돌밭이었다. 이런 밭에 일굴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감자와 옥수수였다. 감자바위라는 조롱의 수식어를 얻은 연유다.

  유년시절에 참으로 많이 보고 먹었던 감자와 옥수수. 요즘에 개락으로 쏟아지는 그 맛난 옥수수지만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개중엔 월등히 맛난 것이 있어 그럴 때 가끔 먹긴 하지만.

 

  어린 아이들의 시골 생활이란 놀이가 대부분이다. 산내들에 지천으로 먹을 것과 놀 것들이었다. 노래처럼 옥수수 알 길게 두 줄 남겨 가지고하모니카를 불었다. 옥수수수염을 가지고 누가 더 질긴가 끊기 내기도 했다. 옥수숫대에 핀 까만 깜부기를 따먹기도 했는데 되돌아 생각해도 무슨 특별한 맛이 있지는 않았다. 그저 아이들 놀이의 하나였을 것이다. 밀짚을 꺾은 대롱으로 비눗방울 놀이를 했으며 수수깡으로는 온갖 공작물을 만들었다. 수수깡은 학교 미술시간에도 즐겨 재료로 썼다. 나중에 도시로 나왔을 때 학교 앞 문구점에서 색색이 물들인 곱고 화려한 수수깡을 파는 걸 보고는 역시 도시아이들의 환경은 다르구나 위화감을 느꼈었다.

  ‘해와 달이 된남매를 쫓아 썩은 동아줄을 타고 오르던 호랑이는 수수밭에 떨어졌는데 그 피가 튀어서 수수깡에 물들었다는 전래동화는 정말로 시골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수수깡 겉면에 붉은 반점무늬가 있다는 걸 수수농사를 짓는 농부 아니면 요즘 누가 알까.

 

  싸릿가지를 휘어 둥글게 틀을 만들었다. 시골집들은 구석구석 거미줄이 많앗다. 싸릿가지 틀에 거미줄들을 묻혀 내면 훌륭한 잠자리채가 되었다. 끈끈한 거미줄의 효능은 도시에서 파는 그물 끼운 잠자리채보다 훨씬 성능이 좋았다.

 

  수크령을 서로 묶어 놓아 길 가는 사람이 걸려 넘어지게 하는 놀이라든가, 아까시나무 잎으로 내기 또는 길흉을 점치는 일, 사실은 아까시 잎은 모두 홀수임을 어른이 된 후 알았다. 아까시 잎이나 바랭이 풀대를 꺾어 풀피리도 불고, 손톱에 봉숭아꽃물 들이기, 개울가에 융단처럼 깔린 토끼풀 꽃을 꺾어 손목시계도 만들고 반지도 만들고 목걸이도 만들고.

이런 놀이들로 촌아이들의 성정은 순박하고 풍부한 감성을 지닌 채 어른이 되어간다.

 

  어른이 된 후에는 꼬마시절의 그 놀이들이 하나도 재미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라고 하는 모든 이들의 한살이니 별똥별을 보며 가졌던 아름다운 꿈들이 그저 어린 날의 치기로 간주되니 참으로 헛헛한 사람의 일생이로다.

 

오늘 직장 동료와 그런 한담을 나누며 청춘시절 가슴 떨리게 좋아하던 로커스트의 <하늘색 꿈> 가사를 음미하는 시간이 있었다.


   세상사에 시달려가며 자꾸 흐려지는 내 눈을 보면
   이미 지나버린 나의 어린 시절 꿈이 생각나
   난 어른이 되어도 하늘빛 고운 눈망울
   간직하리라던 나의 꿈 어린 꿈이 생각나네





윤석중 작사 홍난파 작곡 : 옥수수 하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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