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도토리묵이요

설리숲 2018. 12. 8. 00:24


  산골의 가을은 추수가 끝났다고 한가해지지 않았다. 아버지와 형들은 겨울나기 할 땔감들을 부지런히 들였다. 우리 집만이 아니고 산골의 촌가들은 다 같았다. 다망한 중에도 꼭 필요한 일이 있었으니 도토리 채취였다. 남자들만이 아니라 어머니와 누나 등 집안 모든 식구들이 도토리를 주우러 산속을 톺아 다녔다. 가을 해는 어찌 그리 짧은지. 나도 종다리를 차고 산에 오르던 기억이 있다. 다섯 살 꼬마가 주우면 얼마나 줍겠는가. 그저 엄마 누나 졸졸 따라다니는 게 좋았던 거지.

 

  도토리는 구황식량이다. 그해 쌀이 풍년이면 산의 도토리가 많이 열리지 않고 흉년이면 반대로 도토리가 풍년이라고 했다. 신은 이렇게 사람들을 구휼해주는 따뜻한 인간미가 있는 것이다.

 구황식량이라지만 실은 도토리는 쓰임새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냥 먹기엔 쓰고 텁텁해 도저히 음식이라 할 수 없었다. 맷돌에 탄 부스러기를 한 줌씩 넣어 밥을 안치기도 하지만 그 밥은 씁쓸하니 맛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가을이었다. 가난한 농가라도 추수한 뒤끝이라 한동안은 식량이 있었기에 도토리로 구황할 만한 사정은 아니었다.

도토리의 활용도는 오직 묵을 쑤어 먹는 것이었다.

 

  맷돌로 타 껍질을 분리해 내고 다시 맷돌을 타서 가루를 내었다. 이것을 물에 타 여러 번의 가라앉히고 거르는 과정을 반복해 독소와 쓴맛을 줄인다.

 그런 다음 가마솥에 넣고 끓이면서 저어 주면 우무가 지며 야들야들한 묵이 된다. 두부는 간수를 넣어 응고시키지만 묵은 전혀 첨가물이 없다.

 

  이렇게 만든 묵을 냉랭하고 통풍 잘되는 곳에 둔다. 산골의 가을은 묵을 두기에 참 이상적인 기후다. 어머니는 주로 장독대나 대청마루 쪽문 앞에 두곤 했다. 대청마루 쪽문은 바람이 잘 드나들어 가장 좋은 보관처였다.

  묵은 간장을 양념해 먹었다. 간장 양념의 솜씨에 따라 그 맛도 품격이 달라졌지만 아무 양념 없이 묵만 먹는 것이 오히려 더 훌륭했다. 담백하지만 도토리 특유의 쌉싸래한 뒷맛이 일품이었다. 어쩌다가 희멀거니 고급스러워 보이는 청포묵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언뜻 청포묵이 더 맛난 것 같기도 하지만 어째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어린 꼬마의 입맛이 그 정도였었다. 나는 지금도 묵이라면 시커먼 도토리묵이 최고다.

 

  장독대나 대청마루에 놓아둔 묵은 겉 표면이 굳으면서 더껑이가 진다. 이 껍질을 벗겨내 썰어 역시 양념간장에 무쳐 먹으면 그 맛이 또 기가 막히다. 고들고들하니 씹는 식감이 일품이다. 비오는 날 따온 목이버섯 무쳐 먹는 것과 흡사하다.

  아이들은 묵보다도 이 더껑이무침을 더 좋아했다. 맛도 맛이려니와 더껑이 벗기는 게 여간 재밌는 게 아니다. 끝부분을 손톱으로 살짝 들어낸 다음 죽 들어 올리면 한 군데도 상하지 않고 완벽하게 벗겨진다. 더껑이를 벗겨 무쳐먹고 나면 다시 굳어 더껑이가 앉는다. 아이들은 이 놀이가 재미있어 미처 더껑이가 채 앉기도 전에 또다시 벗겨내려고 해 그럴 때 엄마한테 지청구를 듣곤 했다.

 

  가을의 풍경 가운데 이 도토리묵 쑤는 광경이 가장 아련하고 그립다. 방과 마루, 마당 집 안팎이 온통 도토리와 함지박이던 그 너저분했던 풍경이 유년시절의 가을을 대표하는 그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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