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배불리 못 먹이던 시절이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원기소를 먹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 내 희미한 기억으로는 우리 집만 빼 놓고 다른 집 아이들은 다 먹었던 것 같다.
어쩌다 그 옆에 있다가 두어 알 얻어먹는 때가 있었는데 아, 그 고소한 맛은 천하 일미였다. 영양제라지만 약은 약이니 아이들에게 제일 먹기 싫은 게 약이거늘 원기소는 어찌 그리도 맛나더냐.
내 기억은 정확하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도 원기소를 사다 먹였고 그 혜택은 나만 누렸다는 누나의 말이다. 우리 형제들은 네 살 터울이고 내 위로는 누나가 둘이니 작은형은 나이가 이미 스물을 바라보았으니 없는 살림에 들인 원기소는 딸들에게 돌아갈 수는 없었고 어린 아들인 막내 것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집에서 원기소 먹은 기억은 전혀 없다. 누나는 아들만 위하는 처사에 얼마나 속상하고 불벘는지 모른다고 술회한다.
우리 또래들에게는 추억을 소환하는 아련한 그 영양제 원기소.
원기소는 보리 등의 곡류에서 추출한 효소분말을 발효시켜 소화를 촉진하고, 곡류에 함유된 식이섬유가 변비에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단순한 건강보조식품 이상은 아니었지만 당시 과대한 광고와 무지한 촌사람들에 의해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졌다.
먹는 약으로는 원기소요, 바르는 약으로는 아까정끼였다. 배가 아플 때도 ‘빨간약’ 아까정끼를 바르면 정말로 나았으니 플라시보효과는 대단한 것이다.
원기소는 그러니까 식욕을 돋워 밥을 많이 먹게 하려는 건데 그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식량이 모자라 굶기를 밥 먹듯 하는 산촌의 처지에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그 돈으로 쌀이나 더 사 애들 입에 떠 넣는 게 현명했을 걸.
어쨌든 집에서 먹은 건 전혀 기억이 없고 이웃집 아이 옆에서 간혹 얻어먹었던 원기소의 고소한 맛은 평생 기억한다.
근래 원기소가 생산이 중단됐다 한다. 우리 어린 시절 이후로는 사라진 줄 알았던 원기소가 이후에도 내내 생산시판되고 있었다는 걸 그 기사로 알게 됐다.
또 하나의 추억의 편린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