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 용이 되어 백성과 신라를 지키겠노라고.
그 유언을 받자와 동해바다에 수장된 왕.
경주 대왕암은 문무대왕을 안장한 바위섬이다. 천년이나 더 지난 일이기에 확실하지는 않다. 야사에 기록되어 있으니 후세사람들은 그렇게 알 뿐이다. 그냥 전설에 불과할 것이다. 상식이 일천하여 무식한 의문 하나 가져 본다. 놀라운 현대 과학으로 대왕암을 발굴조사하면 역사적 진실이 새로이 출현할 텐데 왜 안 하는지.
이 의문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경주 곳곳에 산재한 수많은 고분들 가운데 그 주인을 밝혀낸 건 천마총이나 금관총 등 몇 기뿐이고 나머지 분묘들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발굴할 계획도 없다. 왜 안 하는 걸까?
황당하지만 이런 가정도 해 보았다. 무덤들을 건드리면 입을 동티가 무서워서?
그런 가정하에 문무대왕릉을 대하고 서면 일견 그럴 듯하다. 이곳은 소위 ‘기도빨’이 있다는 성지다.
대왕암이 있는 봉길리 해변에 간 아침은 비가 내렸다. 하늘도 잿빛이고 바다도 잿빛이어서 초록이 싱그럽게 번져나가고 있는 계절이 무색하게 우중충한 풍경이었다.
해변은 시민공원이라 늘 인적이 붐비는 곳이다. 이 날은 비가 오는데다 월요일 아침이라 해변은 더욱 괴괴하다. 간혹 차 한 대가 들어와서는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한 방 찍고 가거나 대왕암 가장 가까운 해변에서 바다를 향해 비손을 하는 사람들뿐이다. 저 사람들은 무엇을 소원하는 걸까.
시민공원이라지만 무속신앙이 깊게 자리 잡고 있어 이방인의 눈에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해변가에 즐비한 횟집은 당연 회를 팔지만 집집마다 방생고기를 판다는 간판을 내걸었다. 가겟집 스피커에서는 녹음된 독경소리가 쉬지 않고 나오고 있고 어느 집에서는 장삼가사를 걸치고 머리엔 고갈을 써 비구니처럼 꾸몄지만 한눈에 무당인 여자가 경쇠를 흔들며 주절거리고 있다. 제상엔 돼지머리와 과일 등이 진설돼 있다. 비수기라지만 관광지 횟집에서 벌이는 이런 광경들은 혐오스럽다. 이런 데서 회를 사먹고 싶을까.
모래사장은 더욱 보기 안 좋다. 정성을 들이고 난 흔적들이 너저분하다. 술병에 사과 배에 양초, 시루떡 따위들에 의해 경관이 불미스럽다. 비오는 날의 잔득 내려앉은 대기로 인해 그것들에서 풍기는 악취와 횟집들에서 나오는 촛농과 향냄새에 뒤섞여 잔뜩 인상이 구겨진다.
엄연히 시민공원인데 이 지경으로 방치해 두는가?
2년 전 겨울여행 때 이곳을 지나면서 검푸른 바다와 파도의 하얀 포말이 아름다워 다음에 꼭 놀러 오리라 요량했었다. 겨울바람과 함께 갈매기 떼가 장관을 이루던 그 광경이 암암한데 다시 찾은 초여름의 대왕암은 극혐이었다. 부패한 음식물이 너절하니 까마귀떼가 장관 아닌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하늘도 잿빛이고 바다도 잿빛이고 내 낯도 잿빛이고.
눈으로는 너저분한 음식물들, 검은 까마귀떼.
귀로는 경쇠소리 징소리.
코로는 매캐한 향내와 촛농냄새.
몸으로는 습기 머금은 바람과 빗방울.
오감이 행복하지 못했던 이상한 여행이었다.
아침을 걸러 배는 고팠지만 뭘 사먹고 싶은 생각도 없어졌다.
2년 전 겨울의 대왕암 해변은 참말 장관이었다.
대왕이시여.
당신은 신라인들에겐 수호신이었지만 당신이 가시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나라는 망해 버렸다오. 용이 되셨다면 그 후의 우리 역사를 다 지켜보았을 테지요. 신라와 백성을 지키지 못했다면 당신은 분명 용이 못 되셨을 걸로 압니다만.
1979년 대학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은 노래 <대왕암>이다.
김주영 작사 작곡 노래 : 대왕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