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흑산도 아가씨

설리숲 2018. 5. 22. 23:38






여기까지 오는데 자가용과 버스, 배까지 일곱 번을 갈아탔고 하룻밤을 넘기며 온 시간은 무려 열세 시간 반이 걸렸다. 평소의 지론대로 한국 땅은 참 넓기도 하다.

이렇듯 멀고 먼 섬 흑산도라. 내 언제 다시 올까. 아마 이번 여행이 처음이자 마지막일레라.

 

하긴 멀어서 매력적이지 풍광이나 문화 따위는 그저 그렇다. 경승은 울릉도에 못 미치고 문화는 더욱 그렇다.





 흑산도 아가












 

흑산도에 대한 이미지는 우선 부정적이었다. 섬의 특성상 식당들의 메뉴는 수산물이다, 식당이 많아 어느 집엘 들어가도 다 거기서 거기다. 비싼 건 그러려니 하더라도 혼자 온 나그네는 도대체 먹을 게 없다. 한 식당에 들어가 앉아 그나마 만만한 게 15,000원짜리 전복죽이라 그걸 주문했더니 1인분은 안 된다고 한다. 기실은 전복죽만이 아니라 모든 메뉴가 다 그럴 것이었다.

 

어느 지자체든지 관광홍보로 내세우는 게 친절이다. 장사하는 입장에서야 한 사람을 위해서 뭘 만드는 게 귀찮을 수도 있겠고 큰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닐 거라 너그럽게 이해해보려 하지만 용납은 안 된다. 5천 원짜리 7천 원짜리 식사도 다 1인분을 파는 게 상식이고 그렇게 해서 수익을 남기는 게 식당인데 흑산도에서는 손님이 아닌 식당이 갑이다.

다행히 짜장면 파는 집이 있어 점심으로 먹긴 했지만 영 기분이 께름칙했다. 관광 온 손님에게 밥을 안준다니 이런 불친절이 있나. 불친절 정도가 아니라 굶어죽으라는 말이다. 죄다 밥을 안 팔면 하룻밤 자고 가는 건 어불성설이요 왔다가 그냥 돌아가라는 말이겠다.

 

흑산도 일주도로가 약 25km이다. 하룻밤 숙박하면서 이 길을 도보로 여행할 요량이었지만 계획을 철회해 저녁배로 나가기로 했다. 이튿날까지 있으려면 짜장 굶게 생겼으니 말이다. 흔한 편의점도 없고 하나로마트는 저녁 6시면 문을 닫으니 참말 그렇다.

얼마나 손해인가. 이곳에 와서 돈 좀 쓸 생각을 했으나 그럴 기회를 원천 차단하는 소견머리라니! 이튿날까지 있으려면 최소 세 끼는 사 먹을 테니 그것만 해도 45,000원인 것을 식당은 그것마저 하찮게 여긴 걸까. 게다가 여관비도 써야 했고. 흑산도 전체로선 나 한 사람만으로도 10만원의 관광수익을 저버린 셈이다. 놀러 오시라는 홍보와 광고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주도로를 걸으며 <자산어보>를 집필한 정약전의 유배지도 가보고 싶었으나 이런 연유로 하여 상라산까지만 다녀와 저녁 배를 타기로 스케줄을 바꿨다. 잠은 목포에 나가서 자기로 하고.







이곳이 그 유명한 열두구비길이다. 함양의 오도재, 보은의 말티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구비길인데 흑산도의 이 길은 이름처럼 열두 구비나 돼 가장 으뜸이다. 이 구절양장길의 정상에 오르면 <흑산도아가씨> 노래비가 있고 조금 더 오르면 상라산 정상이다. 정상에 서면 흑산항과 푸른 다도해가 절경인데 안개가 자욱해 명경은 보이지 않고 푸른 배경에 열두구비길만 오롯이 들어온다.










이곳에서 다도해를 보았으면 좋을걸.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거라 장담은 하지 못한다. 언제부턴가 여행을 가면 그 방문이 마지막이라는 념을 가지곤 한다. 다른 데도 갈 곳이 많으니 그곳에 또 올 기회가 없을 거라는 막연한 관념이다. 더구나 이렇게 머나먼 섬을, 또 오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받은 부정적인 인상도 그렇게 거든다.




 종려나무 꽃을 처음 보았다.


 

아 흑산도. 섬과 바다가 검푸르다고 해서 흑산도黑山島.

어쨌든 멀고 먼 나라를 다녀온 것 같은 아득하고 나른한 여독이 좋다. 떠날 때의 설렘과 돌아로 때의 주럽이 여행의 참맛이다.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이미자 노래 : 흑산도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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